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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텅빈 상가… “이런 불황 처음”

입력 | 2008-09-30 02:58:00


‘일상까지 번진 美경제위기’ 르포

MBA학생들 “공직으로 진로 전환 고민중”

부동산업자 “가족 생계위해 일용직 찾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미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미래의 월가 엘리트를 꿈꿔온 경영학석사(MBA) 과정 학생들과 경기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이번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수도 워싱턴의 경영대학원 수업 현장과 경제위기로 잔뜩 주름진 미국인 삶의 현장을 찾아봤다.

○엄습하는 경기침체의 공포

24일 오전 워싱턴 시내에 있는 조지워싱턴대 듀케스홀 2층 강의실.

티머시 포트 교수가 가르치는 ‘기업의 책임과 지속성’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 20여 명이 미국이 처한 금융위기와 그 해결책,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의 타당성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테네시 주에 있는 집을 세놓아 받는 월세로 학비를 충당한다는 에스페란자 킹 씨는 “난마처럼 얽혀버린 현재 금융위기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모른다는 것이 지금 미국이 처한 위기”라고 말했다.

켈시 아테스 씨는 “연소득이 30만 달러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200만 달러짜리 집을 사도록 부추긴 정책 당국자나 모기지 업체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 대학 경영대학원은 지난주 MBA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윤리적 리더십,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대대적으로 바꿨다.

포트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에서도 보듯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며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융 스캔들의 주인공이 모두 ‘톱 5’ MBA 출신이라는 점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역시 워싱턴 시내에 있는 조지타운대 MBA 과정에 다니는 조지 와이스 씨는 “금융산업이 거대한 공포가 지배하는 암흑시대로 접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많은 동료 학생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그라지는 월가의 꿈

메릴랜드대에서 ‘재무 및 금융기관’에 대해 가르치는 엘린다 키스 교수는 공영라디오방송(NPR) 인터뷰에서 “내 코스를 듣는 학생 40명 중 상당수가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월가의 꿈을 접은 학생도 나오고 있다. 조지타운대 MBA에 재학 중인 저스틴 맥마한 씨는 “뉴욕보다는 공직 기회가 많은 워싱턴을 택하려 한다”며 “워싱턴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대 아스워드 다모다란 교수는 NPR에서 “그동안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오로지 뉴욕, 런던, 도쿄의 투자은행에 몰렸지만 이제는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세계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현장 기업들로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숨 가득한 자영업자들

28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타이슨스 코너 일대. 버지니아 주에서 가장 번성한 상업지역 중 한 곳이지만 상당수의 건물 입구에는 ‘임대 공간 있음’이라 쓰인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인근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로 접어들자 빈 상가는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이 일대에서 상가 임대업을 하는 교민 박대환 씨는 “최근 20년 사이에 이렇게 임대가 안 되는 건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교민은 “한인 사업자 가운데는 건설공사에서 소규모 부대 공사를 하청 받는 소규모 건설사업자가 많았는데 건설경기 침체로 수입이 끊긴 경우가 많다”며 “모기지를 못 내 집을 압류당한 사람도 꽤 있다”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서비스업체인 콜드웰뱅커에서 7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해 온 마이크 뉴먼 씨는 최근 주업인 부동산중개업을 파트타임으로 돌렸다. 그는 “세 딸을 둔 가장으로서 생계가 어렵게 된 탓에 자구책으로 일용직을 잡았다”고 말했다.

헤리티지재단의 스튜어트 버틀러 국내경제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주요 경제지표의 개선보다 평범한 미국인이 받는 심리적 충격의 치유가 더 시급한 정책 당국의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프린스윌리엄카운티(버지니아주)=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