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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 박힌 관광버스 여행 대신 페달 밟고 내고장 절경‘재발견’

입력 | 2008-09-30 06:28:00


“임진왜란 때 명장인 정기룡 장군이 말을 타며 무예를 닦은 곳이라 그런지 뿌듯해요.”

경북 상주시 상주여고 2학년 윤현아(18) 양은 29일 “경천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상주시 사벌면의 경천대. 낙동강 줄기 가운데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유명한 이곳에 여고생들의 ‘자전거 물결’이 이어졌다.

상주여고 1, 2학년 353명과 교사 26명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10km가량 떨어진 경천대에 도착한 것은 26일 오전 10시 반. 이영기(61) 교장이 자전거 행렬의 맨 앞에서 페달을 밟았다.

학생들은 상주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내를 빠져나와 두 줄로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변의 가을 풍경을 감상하며 1시간 만에 경천대에 다다랐다. 선생님들은 보물찾기 놀이를 위해 전날 주변에 학용품을 숨겨 놓았다.

상주여고가 이 자전거 대행진을 하게 된 것은 가을이면 으레 관광버스를 빌려 서울 등지로 체험학습을 가곤 하던 방식을 바꿔보자는 교사들의 의견 때문.

이 교장은 “학부모의 상당수가 농사를 지어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데 기존의 체험학습에는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 자전거 체험학습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낙동강의 상쾌한 가을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데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체력 강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삼조 체험학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아졌다.

56년 학교 역사에 처음 있는 자전거 체험학습이었다.

‘자전거 도시’ 상주에 어울리게 학생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고 있어 간단한 도시락만 준비하면 멋진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점도 작용했다.

이 교장도 3km가량 떨어진 집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학생들은 경천대 옆에 있는 옛 사벌국의 유적을 살펴본 뒤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졌다.

2학년 오솔길(18) 양은 “경천대를 향해 페달을 밟을 때마다 한발 한발 다가오는 가을의 모습이 꼭 말을 타고 가는 듯했다”며 “길 양쪽에 핀 코스모스가 우리에게 손짓을 하는 듯한 느낌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었다”고 좋아했다.

학교 측은 ‘자전거로 떠나는 가을체험학습’을 주제로 이날의 느낌을 글로 써보도록 할 계획이다. 김승태(44) 국어교사는 “기계적인 활동보다는 학생들이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풍성하게 느낄 때 좋은 글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학생들이 앞 다퉈 글을 써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2학년 이민향(18) 양은 “경천대와 정기룡 장군이라는 자연과 역사에 2010년 경천대 일대서 열리는 세계대학생 승마선수권 대회를 엮어 감상문을 써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 40명은 평일 오후 11시까지 학생들의 공부를 지도하고 있으며 휴일에도 돌아가면서 자율학습을 맡고 있다.

변권수(42) 학생부장은 “학생과 교사가 한마음으로 페달을 밟아서 그런지 며칠 만에 학교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며 “정기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