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육을 정상화시키자.’ 역대 정부가 교육개혁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결같이 포함시켰던 목표다. 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에 나가서 꼭 필요한 지식과 자질을 익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야 틀리지 않지만 현실과 괴리된 공허한 느낌을 준다. 올해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84%를 기록했다.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전문계고교생의 대학 진학률도 73%에 달했다. 다들 대학 진학을 원하는데 고등학교가 소신과 철학을 내세워 입시와 관계없는 교육을 한다고 치자. 학생과 학부모한테서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고교가 입시학원과 같아서는 곤란하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할 만큼 고교 시절은 생애 주기에서 감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다. 이때 꿈을 한껏 키우도록 학교가 적절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결국 고교 교육은 입시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 연결고리는 ‘종속 관계’가 아닌 ‘느슨한 관계’가 바람직한 것이다. 대학이 뽑으려는 인재의 기준을 지나치게 좁혀 버리면 일선 고교는 그 제한된 틀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고 고교 시절에 필수적인 교육이 배제되는 위험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교수 정년심사제를 강화하는 등 대학 개혁을 선도해온 KAIST가 신입생 전형에서도 획기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2010학년도부터 전형 방식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입시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전형 방식을 발표하면 사교육을 통해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 ‘능력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무(無)요강 입시’를 하겠다는 설명이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KAIST다운 발상의 전환이다.
▷아무리 사회가 대학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도 대학들은 이기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입시에서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 하는 것은 대학의 본능이다. 역대 어떤 정부도 이런 대학의 이기주의를 막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지난 시절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저(低)출산 세태 속에서 대학의 생존은 누가 시대에 맞는 인재를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KAIST의 입시 실험은 다른 대학들을 바짝 긴장시킬 만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