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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통 독일 레퍼토리 기대하세요”

입력 | 2008-10-02 02:58:00


내달 20일 내한공연 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

“브람스 교향곡 전곡 이틀간 연주

방한 3주전부터 심포니 집중 연습”

126년 역사의 세계 최고의 원위를 자랑하는 베를린의 필하모니아 홀은 이른 아침부터 어린학생들로 붐볐다. 베를린 시내 6개 초중고등학교 12세부터 19세까지의 학생들로 구성된 스쿨연합오케스트라의 연습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조 지휘자의 오랜 연습이 끝나고 이윽고 사이먼 래틀 경이 무대 위로 등장하자 마치 학생 단원들은 물론 객석을 가득채운 학부모, 시민들은 마치 팝스타를 만난 듯 박수와 환호성을 질러댔다.

2002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첫 영국 출신 지휘자로 베를린 필의 수장을 맡은 사이먼 래틀 경(53). 은빛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의 그는 입에 마이크를 낀 채 능숙한 독일어로 해설을 곁들이며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11월20, 2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갖는 그를 29일 오후 유서깊은 베를린 필하모니아 홀 지휘자실에서 만났다. 그는 “젊은이들은 베를린 필의 미래”라며 “베를린 필의 위대한 전통은 어떤 진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 베를린 필의 내한공연 때는 현대음악과 프랑스, 독일음악 등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이틀간 ‘브람스 교향곡 전곡(1~4번)’을 연주할 예정인데.

“브람스 교향곡 사이클은 오케스트라의 역사에서 매우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베를린 필은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처음 연주하기도 했다. 이번엔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정통 독일 레퍼토리를 감상해달라. 우리는 한국에 가기 3주전부터 브람스 심포니 전곡을 연습하고 녹음을 할 계획이다.”

-당신은 올해 4월 단원들의 중간평가에서 통과해 2012년까지 예술감독 지위가 보장됐다.혹시 카라얀처럼 종신 지휘자가 되는 것을 꿈꿔본 적은 없는가.

“지휘자가 바뀐 후 첫 5년은 늘 거대한 변화의 시기다. 나와 오케스트라가 비로소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카라얀은 단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종신지휘자 계약을 맺었다. 당신들이 미워하든 말든 나를 제거할 수 없다’고. 지금은 다른 시대다. 종신지휘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원들과의 협상이 필요하다.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어디로 갈 지는 상상할 수가 없다. 베를린 필의 연주를 한 번 들어본 사람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는 126년 역사를 지닌 베를린 필의 지휘자를 박물관의 큐레이터에 비유했다. 그는 “브람스같은 전통의 사운드를 보존하는 것은 쉽다. 문제는 어떻게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줄 것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베를린 필은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가장 위대한 전통은 무엇인가.

“첫번째 전통은 독립 정신이다(the idea of independence).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연주가 아니야, 이것은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다른 오케스트라가 되거나 산산이 흩어졌을 것이다. BPO는 시작부터 엑설런트했을 뿐 아니라 독립적인 전통을 갖고 출발했다. 또한 새로운 음악, 현재 거기에 있는 음악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전통도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라얀의 시대에는 그런 점은 미비했다. 그러나 초창기 시작부터 한스 폰 뷜로, 아르투르 니키슈, 푸르트 뱅글러 때는 그랬다.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오케스트라에게 매우 매우 중요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전통도 바로 그것이다.”

- 세계 최고의 솔로이스트들로 구성된 베를린 필을 이끌고 가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나는 마에스트로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는데.

“내가 이 방에서 카라얀을 처음 만났을 때 카라얀은 ‘만일 당신이 이 오케스트라에게 25%를 준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75%를 되돌려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위대한’ 오케스트라와 ‘좋은’ 오케스트라의 차이다. 위대한 지휘자가 베를린 필에 와서 끔찍한 트러블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원들을 손에 쥐고 흔들려 하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128명의 단원들이 스스로 가능성을 창조하고, 서로 듣고, 반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마치 윔블던 테니스처럼 쇼트로 공격하면, 쇼트 백으로 되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

베를린 필 산하에는 ‘12첼리스트’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같은 수십개의 실내악 단체가 있다.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에 자주 참석하는 래틀은 “오케스트라는 현악 4중주의 확장이다”며 “실내악이야말로 오케스트라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취임 이후 10대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교육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요.

“이것은 ‘베를린 필의 미래’(Zukunft@berlin.phil)다. 지난 주에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이 유치원에서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이런 연주를 20분이든 30분이든 매주 할 계획이다. 그곳이 유치원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그들은 관객으로 완벽했다. 사람들이 음악에 노출되는 경험은 소중하다. 음악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누구나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래틀 경은 불과 25세에 영국의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맡았던 지휘계의 ‘분더킨트’(신동)이었다. 그는 1987년 32살의 나이로 베를린 필에서 말러 교향곡 6번을 처음 지휘했다.

- 21년 전 베를린 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가.

“당시 나는 필하모니에 처음 와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30분 동안 빌딩 주변을 헤매 다녔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내 스스로 길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허설을 시작했을 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매우 관대했고, 개방적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말러 교향곡 6번이 연주됐을 때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소리였다. 마치 내 눈 앞에 촛불이 환하게 켜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 땅 속 깊은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음향에 충격을 받았다.”

- 요즘 전세계에는 20대 젊은 지휘자 붐이 불고 있다. 관심있게 보고 있는 차세대 지휘자는.

“구스타보 두다멜(27), 로빈 티치아티(25)와 같은 젊은이들은 환상적이다. 그들의 엄청난 열정과 테크닉을 볼 때면 흥분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서로간에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두다멜은 ‘굿 맨’이다. 티치아티는 젊은 시절의 콜린 데이비스 경을 연상시킨다. 이들보다 약간 나이는 많지만 런던 필하모닉에서 연주하는 블라디미르 유롭스키도 환상적인 뮤지션이다. 다니엘 하딩은 지난 주에 나와 미카엘 보더와 함께 3명이서 슈톡하우젠의 ‘그룹들(Grouppen)’을 연주했다. 나는 젊은 지휘자들의 열정과 뛰어난 테크닉을 볼 때마다 흥분된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재능있는 지휘자가 나타날 것이다.”

래틀 경은 이번 방한에 부인인 체코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체나와 3개월 된 막내아들과 동행할 예정이다. 그는 “2005년에 한국에 왔을 때 용산 국립박물관 방문이 무척 인상 깊었다”며 “지난 번엔 두 시간 밖에 못봐 아쉬웠는데 이번엔 갓난 애가 있어서 걱정된다”며 웃었다. 7만~45만원. 6303-7700

베를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상취재 : 동아일보 전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