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0월 2일 오전 8시 37분 ‘할리우드의 연인’ 록 허드슨이 숨졌다. 뛰어난 스포츠맨, 성실한 배우, 친절한 남성으로 인정받던 59세의 영화배우를 저세상으로 데리고 간 것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었다.
당시 에이즈는 ‘동성애 전염병(gay plague)’쯤으로 치부되는 질병이었다. 악수만 해도, 호흡으로도, 화장실 변기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는 괴담이 무성했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된 때는 1979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질병관리센터가 이 병을 처음 보고했지만 미국 질병방역센터는 1981년에야 공식 확인했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발병했다는 이유로 공개석상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데에는 허드슨의 공이 컸다. “허드슨의 죽음이 에이즈에게 얼굴을 줬다.”(영화배우 모건 페어차일드)
과음과 줄담배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 배우는 1984년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병색이 짙어지자 외부에는 수술이 불가능한 간암에 걸렸다고 알렸다.
이듬해 치료차 방문한 프랑스 파리의 병원에서 허드슨은 자신이 에이즈로 죽어 가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4년 전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을 당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액이 수혈된 것으로 추측했다.
영화제작사가 연기력보다 육체적 매력을 부각시키려고 출연하는 영화마다 셔츠를 벗기기에 바빴다는 허드슨이었지만 이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 밖 동성애자로서의 삶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허드슨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고 병으로 반점이 생긴 모습까지 공개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의 용기 덕에 에이즈라는 질병에 세계가 주목했으며 치료제 개발에 힘쓰는 계기가 됐다. 또 대중은 에이즈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고 깨닫게 됐다.
허드슨과 막역한 사이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에이즈 구호기금 마련에 발 벗고 나섰고 미 의회가 에이즈 연구를 위해 긴급지출을 결의하는 등 에이즈 퇴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친구인 허드슨의 죽음으로 에이즈에 대한 레이건 대통령의 견해가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에이즈와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 세계 연구자가 에이즈 퇴치를 향해 달려들지만 에이즈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질병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