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타케 직원이 도색 작업을 하고 있다. 노리타케는 ‘최고의 품질이 아니면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믿음을 팔아라/서영아, 천광암 지음/280쪽·1만3000원·마이다스동아
일본어 시니세(老鋪)는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이나 상점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시니세 왕국이다. 통계에 따르면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기업이 현재 2만여 개에 이른다.
반면에 신생 기업의 40%가 5년 안에 문을 닫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인 저자들은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교훈을 찾기 위해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까지 일본 열도 구석구석에 있는 시니세들을 찾아 다녔다. 그 각각의 취재는 2007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30회 시리즈로 동아일보에 게재됐다. 이 책은 그 시리즈를 다듬고, 내용을 추가해서 엮은 결과물이다.
100년을 넘긴 기업들인 만큼 흥미로운 역사가 가득하다. 1904년 창업한 ‘노리타케’는 고급 식기 메이커로 이름 높은 회사.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노리타케에 품질 좋은 석탄을 공급해주면서 식기 생산 재개를 독려했다. 그러나 노리타케 경영진은 “전쟁 와중에 숙련공층이 엷어져 예전과 같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없다”며 ‘노리타케’ 브랜드 대신 ‘로즈 차이나’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었다. ‘고객의 기대를 배신하지 말라’는 경영철학을 지킨 것.
1899년 창업한 토마토 가공식품업체 ‘가고메’는 전 세계에서 가져온 토마토 씨앗 7500종을 보유하고 있다. ‘밭이 제1의 공장’이라는 게 회사의 철학. 밭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 씨앗을 연구하며 품질을 관리한다.
1520년에 창업한 전통과자 제조업체 ‘도라야’는 브랜드 이미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면 아무리 고급 백화점이 입점을 사정해도 응하지 않는다. 1724년 창업한 청주 제조업체 ‘사우라’는 ‘품질을 높이는 것 외에는 어떤 경쟁에도 휘말려 들지 않는다’는 경영 방침을 갖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