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회에서 ‘일심단결’만큼 많이 쓰는 구호도 별로 없다. 관영언론은 새해를 맞거나 김일성 김정일 부자(父子)의 생일,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 정권 수립일(9월 9일), 노동당 창당일(10월 10일) 등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일심단결’을 외친다. 평양 거리에도 ‘백두산의 혁명정신’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 외에도 ‘일심단결’이란 구호가 넘쳐난다. 헌법 전문(서문)에도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大家庭)으로…’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전 인민이 주체사상으로 뭉치자는 뜻이다.
▷조선중앙방송은 노동당 창당 63주년을 일주일 앞둔 어제 “일심단결을 강화하는 사상교육에 평양시와 자강도, 평안남도 당조직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병설 속에서 50일째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주목되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건강 및 후계체제 문제와 중단된 핵협상 등으로 북에 불안 요인이 가중되고 있으며, 체제 붕괴의 우려까지도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사상교육에도 한계는 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등에 보냈던 미녀응원단을 8월 베이징 올림픽 때는 보내지 않았다. 더는 ‘미녀들의 입’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남한에 왔던 응원단은 ‘남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왔지만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귓속말로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했고, 이것이 입소문으로 퍼져나가면서 북 지도부가 적잖게 당황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조선의 별’ ‘동지애의 노래’ ‘일심단결’ 같은 혁명 가요다. 젊은이들은 이 가요에 북 체제를 꼬집는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연행과 처벌이 뒤따르지만 근절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놓은 노래가 청년의 짝사랑을 주제로 한 ‘휘파람’인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역시 인간의 본능과 감성은 교육과 강제만으로 좌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부질없는 사상교육에만 매달리는 북이 딱하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