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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민]北, 10·4선언 이행 요구보다 대화가 먼저다

입력 | 2008-10-06 02:56:00


남북 간 합의문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지침이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된 경우가 드물다. 북한은 7·4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강조한다. 남한이 민족화합의 장전으로 여기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이 합의 사실 자체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북한이 처음부터 합의 사항을 지킬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우리 정부에 10·4선언의 이행 방침부터 밝히도록 요구하고 있다. 남측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천명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논의할 수 없고 남북관계의 파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10·4선언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맞먹는 수준의 방대한 내용을 담은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은 크게 봐서 3자 또는 4자 간의 종전선언 추진 문제와 남북경협 사안으로 짜였다. 전자가 북-미 관계 개선을 타깃으로 삼은 북한의 의도를 반영한다면, 후자는 남측 문안이 대폭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남한의 대선기간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대사변’을 노린 북한의 대남전략 차원에서 개최됐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남측이 제안한 다양한 경협 사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다. 10·4선언의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이는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합의 사항은 그때까지의 관행대로 북한의 입맛에 맞게 선별적으로 수용하면 그만이다. 짧은 시간에 방대한 내용을 담은 합의문일수록 북한의 이행 의지가 배제된 공수표일 가능성이 높다. 그와 함께 북한의 수용 능력이나 경제 현실을 냉정히 고려하지 않은 남측의 제안도 공염불에 불과했다. 결국 대남 정세에 대한 오판으로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실패하고 말았으며, 크게 당황한 북한은 올해 초부터 대남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남북한은 모든 합의안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실천 가능한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만을 강조하며 그 이행을 요구하지만 북한이 이행하지 않은 내용이 많다. 6·15공동선언의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해결을 이행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엇박자는 한미공조체제를 크게 이완시켰고, 대북 유화적 태도로 국민적 불신이 초래되면서 남남 갈등의 골이 깊게 파였다. 그러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핵문제 당사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회의를 불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의 핵문제를 비롯한 대북정책의 실패 속에서 대북경협 패턴을 그대로 지속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제약조건을 안고 출범했다. 여기에다 대남전략을 전면 수정 중인 북한 내부사정으로 당국 간 남북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북 대화가 열려야 남북경협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합의 사항의 이행이 가능하다. 일단 남북 대화가 개최되면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되었던 모든 합의를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북한이 요구하는 두 선언의 합의 사항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를 협의할 수 있다. 북한이 남측의 전면적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고 10·4선언을 무조건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