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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칼럼]공교육, ‘학교’ 아닌 ‘질’의 문제다

입력 | 2008-10-06 02:56:00


이명박 대통령이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 계획을 구체화하는 모양이다. 신문에 난 대로라면 불행히도 또 하나의 빗나간 미봉책일 뿐 공교육의 체질 강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사교육만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선 ‘자율형’ 사립학교를 세우는 일에 정부가 구체적 사안에까지 관여하며 학교 수를 정하는 일 자체가 자가당착이며 공교육 난맥상에 대한 구조적 원인 분석에 기초한 본질적 해결책이 못 된다.

사교육의 범람이 문제되는 것은 가계에 대한 압박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계층 간 실질적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가적 교육 자립도는 오히려 낮아지면서 백년대계를 외국 학교에 의존하는 듯한 추세가 더 큰 일이다.

교육열이 높기로 이름난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이 무엇인가. 개별화된, 질 좋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수요 및 구매력에 비해 공교육 기관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이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외나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출제경향을 미리 알려주는 등 잘못된 입시 관행 때문이라 치더라도 어린 자식과 아내까지 외국으로 보내는 이유는 학교 교육의 전반적 질이 외국, 심지어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생각되는 나라의 교육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 아닌가.

정부 관여 자율형학교 자가당착

왜 유독 공교육 분야는 국민의 기대와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하는가. 국민이 가진 교육 역량의 최대치가 순리적 경쟁과정을 통해 학교 교육의 발전을 위해 투입되기 어렵도록 학교 교육을 옥죄어 온 정치적 간섭, 관료주의적 규제, 그것과 교묘하게 뒤집혀 맞물리며 부정적 상승효과를 일으킨 전교조식 맹목적 평등주의 때문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 정원이나 교과과정, 등록금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입생 선발 시험의 양식까지 정부가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에서 교육을 향한 열의와 창의성, 상상력이 다른 영역에서처럼 신나게 발휘될 수는 없다.

형식으로는 ‘평준화’된 학교 교육이 내용으로는 점점 더 황폐해져서 선행학습과 보충학습이 당연시되는 속에서도 평준화의 틀을 깨는 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해 온 세력이 있다. 하지만 자기들이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경제적 약자층의 자녀는 형해만 남아 하향 평준화된 학교 교육에만 의존할 뿐 값비싼 해외 유학이나 연수는 물론 학원이나 과외 수업에도 끼어들 여지가 없어 진학기회 확보에서 실제로는 평준화 이전 시대보다도 불이익을 더 받는다는 현실은 극구 외면해 왔다.

배울 권리는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배우는 일을 개개인이 따로 하기보다 학교라는 공교육 기관을 만들어 수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개인의 교육권을 박탈하자는 것이 아니고 박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어린 국민이 보호자의 무지나 무관심 때문에 소중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무교육 규정을 두고 공교육을 통해 국민 누구나가 누릴 수 있는 교육 기회의 하한선을 보장해 주지만 전체주의적 통제체제가 아니고는 교육 결과의 평등이나 기회의 상한선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다르고 교육시장과 기회는 전 세계적으로 열려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세계화 시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적 자원밖에 없는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국민적 역량의 최대치가 공교육의 영역으로 유입되어 낭비 없이 가동되도록 기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교육단계별로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교육 목표와 학교별 졸업 요건을 제시할 뿐 그 목표, 그리고 그 이상의 교육효과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는 온 세계와의 교류 및 경쟁 속에서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는 대학과 단위학교의 자율에 맡길 일이다.

공교육 질 높여 외국행 낭비 막길

세금으로는 누구에게나 입학이 보장되는 공립학교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치중하고 그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비싼 사립학교를 만들어 다니겠다는 사람에겐 길을 활짝 터 줘라. 수업료도 비영리를 전제로 시장이 허용하는 만큼 받게 하되 대신 일정 비율의 학생은 전액 장학생으로 받도록 요구함으로써 부자 학부모들이 우수하지만 가난한 학생의 학비까지 대는 장치를 만들면 된다. 교육자원이 사교육이나 외국이 아니고 우리의 공교육으로 들어올 수 있게 교육적으로 매력적인 길을 터야 하는 것이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