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8일자부터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한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의 해설 코너를 매주 연재합니다. 이 코너에서는 교과서를 집필한 교수들이 직접 책에서 다뤄진 내용을 바탕으로 각종 경제 현상과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거래할때 상대방이나 제품에 대한 정보량의 차이
미흡한 정보로 인해 바람직하지 않은 거래를 하게 되는 것을 ‘역선택’이라 불러
거래를 하고 싶은 상대방이 있는가 하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을 사려고 시장에 가는 경우 좋은 상품을 파는 사람에게서 상품을 사고 싶고, 나쁜 상품을 파는 사람과는 거래하고 싶지 않다.
상대방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한눈에 잘 알 수 있다면 좋은 상품을 파는 사람만 골라 거래하면 된다. 그런데 정보가 부족해 상대방의 유형을 잘 모를 때는 어떤 사람을 만나 거래할 가능성이 높을까?
다음 글을 읽고 함께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내용] 지선이는 많은 연구개발비를 들여 각자의 체형에 맞도록 설계된 ‘나마네’ 정품 의자를 만들어 판다. 다연이는 ‘나마네’ 정품 의자가 인기가 있는 것을 알고, 이를 흉내 내 유사품 의자를 정품 의자의 반값에 만들어 판다. 유사품 의자는 정품 의자의 중고 부품 등을 이용하거나 값싼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하고 쉽게 고장 날 수 있다. 지선이와 다연이는 각각 자신의 의자를 만드는 데 16만 원과 8만 원의 비용이 들었으며, 시장에는 지선이와 다연이가 만든 의자가 반반씩 섞여 있다. 의자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어떤 의자가 정품 의자인지 유사품인지 구별할 수 없다. 다만, 소비자들은 ‘나마네’ 정품의자에는 20만 원을, 유사품 의자에는 10만 원을 기꺼이 지불할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자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정품 의자와 유사품 의자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평균값으로 15만 원에 의자를 사려고 한다.
―한국경제교육학회 편,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 139쪽
[이해] 먼저 지선이와 다연이는 15만 원에 각자 자신이 만든 의자를 팔 의향이 있을까? 지선이는 정품 의자를 만드는 데 16만 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15만 원에는 팔지 않는다. 그러나 다연이는 8만 원의 비용으로 유사품 의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에서는 정품 의자와 유사품 의자 중에서 어느 의자가 유통될까? 지선이는 정품 의자를 만들면 계속 손해를 보기 때문에 시장을 떠날 것이고 결국 시장에는 다연이의 유사품 의자만 남게 된다.
만일 소비자가 정품 의자와 유사품 의자를 구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가 정품 의자에 대해 20만 원을 지불할 생각이 있기 때문에 지선이는 정품 의자를 팔 때마다 4만 원의 이익을 얻는다. 또 다연이도 10만 원에 유사품 의자를 사려는 소비자에게 의자를 팔고 2만 원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정품 의자는 정품 의자대로, 유사품 의자는 유사품 의자대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여기서 지선이가 자신이 만든 의자에 대해 3년간 무상으로 수리 또는 보상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선이는 최고 재료와 기술로 제작한 정품 의자가 웬만하면 3년간은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선이의 이런 약속은 소비자에게 바로 이 의자가 정품 의자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소비자는 이 의자에 대해 흔쾌히 20만 원을 지불할 것이다.
만약 소비자가 모든 의자에 대해 3년간 품질 보증 약속을 하라고 요구한다면 다연이는 이를 받아들일까? 다연이의 유사품 의자는 중고 부품이나 값싼 재료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3년 안에 고장이 날 가능성이 높다. 품질 보증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이는 자신이 만든 의자가 유사품 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시장에서 거래 당사자의 한쪽에는 정보가 많은데 다른 쪽에는 없는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 시장에서는 보통 차를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에게 제품에 대한 정보가 더 많다.
이렇게 거래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상대방과 거래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상대방과 거래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을 ‘역선택’이라 부른다.
앞의 사례에서 소비자는 판매자보다 의자의 품질에 대한 정보를 더 적게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소비자는 정품 의자와 유사품 의자를 구별할 수 없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정품 의자가 사라진 채 유사품 의자만 남게 되고, 소비자는 원하지 않는 유사품 의자를 파는 사람과 거래하게 된다.
이 문제는 소비자가 정품 의자와 유사품 의자를 구별할 능력을 갖출 때 해결될 수 있다. 판매자가 품질 보증 약속을 통해 소비자에게 자신의 의자가 정품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거꾸로 소비자가 판매자에게 품질 보증 약속을 요구함으로써 누가 정품 의자를 팔고 누가 유사품 의자를 파는지 선별해 낼 수도 있다.
박형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정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