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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과제 긴급점검]경제 - 공포의 확산 막아라

입력 | 2008-10-08 02:54:00


심리불안이 시장불안 부추겨… ‘정책 안정제’ 처방 필요

유동성확보 급선무… 기업들 달러 풀게 해줘야

유가하락 반영되면 내달 경상수지 개선 기대

“외환위기의 악몽이 재연될까 불안할 뿐입니다. 쇼핑을 할 때도 요즘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꼭 필요한 물건만 사게 됩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아무래도 과소비를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중견 그룹의 A 상무는 요즘 월급이 줄어든 것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금융시장 위기가 언제 소속 회사나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A 상무가 느끼는 불안감은 곧바로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업계 대표주자인 이마트조차 9월 기존점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 일부 업체는 올해 목표치 하향조정 작업에 나서는 등 비상경영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지표로 나타나는 기초체력(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기업과 소비자 등 각 경제주체의 심리적 불안이 나쁜 방향으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화(禍)를 키우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한다. 외환위기의 경험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피해를 얼마나 줄이느냐도 정부가 ‘공포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 자동차 對美 수출 5년 만에 최저

국내 수출기업들은 다음 달 27일 추수감사절부터 시작돼 연말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주목하고 있다. 예년과 달리 이 기간 미국의 소비심리가 크게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 실물경제 위기가 본격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자동차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벌써부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자동차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8월 국산 자동차의 대미(對美) 수출은 5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또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9월 반도체 수출액은 작년 동월보다 9.9% 급감해 7월 이후 3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지방 아파트 미분양으로 인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대출 부실도 한국경제의 뇌관이다. 한 시중 저축은행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분양업체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친척 등을 동원해 가짜로 분양한 몫까지 포함하면 실제 미분양 규모는 30만 채를 훌쩍 넘는다”며 “지금보다 집값이 10∼20% 더 떨어지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퍼져나갈 것으로 생각하며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주요 그룹들 상당액 외환 보유

수출 급감은 곧바로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진다. 이는 곧 실물 부문에서도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린다는 의미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의 특성상 금융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실물 부문에서조차 달러를 수혈받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달러가 부족해 환율이 치솟고 이는 내수위축→경기둔화→가계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가속화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공포가 확산되다 보니 수출기업이나 금융권, 개인은 달러가 있어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살고보자’는 식이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6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인 1328.1원으로 폭등한 것도 너도나도 ‘사재기’에 나선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그룹 관계자는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주요 그룹은 사실 어지간한 은행보다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지만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당장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달러를 시중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국제유가 하락분이 반영되면 경상수지가 개선될 것이라며 이들의 불안감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입액이 줄어드는 것보다 수출액이 더 빨리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민간의 우려다.

○ 한중일 동아시아 펀드 적극 추진해야

경제 전문가들은 과도한 불안감이 더 큰 위기를 부르는 ‘자기실현적 위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장의 불안심리부터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달러 유동성 확보가 선결과제라는 지적이다.

김상로 산은경제연구소장은 “당장 시급한 일은 국제 금융위기가 국내에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외환시장과 외화자금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 펀드 등 한국 중국 일본의 공동 대응 체제가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또 민간기업이 달러를 풀도록 유도하는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수출기업이 달러를 판 뒤에 환율이 더 올라가더라도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의 상품을 내놓도록 정부가 지원해 이들 기업의 외화를 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외환보유액을 쏟아 붓는 매도 개입보다는 필요할 경우 시장의 실패에 상응하는 환율 변동폭 제한 등의 조치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과 민간이 위기에 지나치게 반응하면 오히려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투기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침착한 위기관리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국민이나 정부 모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서둘러서는 안 된다”며 “어려울수록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패를 외국 투기자본에 읽히고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