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
“그래. 우리의 젖줄 해란강, 그 해란강이 느리게 가로지르는 지붕, 어둡고 슬픈 한 맺힌 나라로 길을 가기 전 그 지붕의 처마 끝을 따라….”
아버지는 감정에 격해져 두 손을 휘저으며 외치고, 양 옆에서 우스꽝스러운 콧수염과 가발을 쓴 두 아들은 잔뜩 긴장해 있다.
연극 ‘굴레방 다리의 소극’은 중국 옌볜에서 온 밀입국자 세 부자(父子)의 우스꽝스러운 하루를 다룬 블랙코미디다. 지난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퍼스트 어워드를 수상한 아일랜드 연극 ‘더 월워스 파스(The Walworth Farce)’를 번안해 서울 마포구 아현동으로 무대를 바꿨다. ‘보이첵’으로 잘 알려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1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세 부자의 하루는 연극으로 채워진다. 옌볜에서 재산 문제로 동생 부부를 죽이고 온 대식은 두 아들과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가 숨어 사는 곳은 피살 직전까지 동생 부부가 살던 아현동 굴레방다리 지하 셋방.
햇빛도 안 들어오는 컴컴한 이곳에서 이들은 매일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연극을 올린다. 극 속에서 동생 부부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사고사로 위장되어 있다. 옌볜 사투리 대사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개화기 스타일의 몸동작이 가미된 극중극은 어지간한 코믹극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린다.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 부자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10여 년간 어머니와 이모 역을 맡아온 큰아들 한철은 자신을 점차 여성처럼 생각하고, 둘째 두철은 공연장을 벗어나면 언어소통이 어렵다.
처지를 비관한 한철이 아버지를 죽이고, 상황을 오해한 두철이 한철을 죽이며 연극은 결말을 맺는다.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두철은 연극 소품을 사며 바깥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기를 원해 왔던 인물. 그러나 정작 기회가 주어진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집 문을 걸어 잠그고 1인극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선택했던 방식이다. 그가 연극 도구를 들고 분장한 채 객석을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고 슬프다. 12일까지. 서울 대학로 SM틴틴홀.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