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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영화-연극-뮤지컬로… 판소리, 문화콘텐츠의 ‘팔색조’

입력 | 2008-10-09 02:59:00

‘옛것’ 판소리가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익숙한 내용이면서도 자유롭게 변형되는 텍스트와 관객이 추임새를 넣는 동참 효과가 특히 부각된다. 왼쪽부터 국악인 이자람 씨의 ‘사천가’ 공연, 영화‘가루지기’, 연극 ‘척척생겨’, 연극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


세트-등장인물 구애받지 않아

현대 공연 흐름과 맞아떨어져

텍스트 자유로운 변형도 가능

판소리가 날아오른다. 영화 ‘가루지기’ ‘소리아이’, 연극 ‘척척생겨’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 ‘옹녀이야기’ ‘도화골 음란소녀 청이’ 등 다양한 장르로의 분화뿐 아니라 ‘사천가’처럼 외국 소재까지 담아내는 등 판소리는 ‘팔색조’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판소리가 21세기의 문화콘텐츠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판소리는 본래 1인극 형태다. 혼자서 여러 역을 맡고 시공간의 배경을 설명하기 때문에 작품 소화력이 뛰어나다. 신세대 국악인 이자람 씨가 판소리와 뮤지컬을 결합한 ‘사천가’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사천가’를 올린 두산아트센터의 김요안 PD는 “판소리가 가진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은 현대 공연계의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무대 세트나 등장인물의 수에 구애받지 않는 것, 관객의 적극적인 공연 참여, 솔직 담백한 대사 등은 서양에서도 현대극에 와서야 이룬 발전”이라고 말했다.

신라시대 김유신의 요리사가 벌인 사기 행각을 다룬 연극 ‘척척생겨’는 극중 배경이 경주와 황산벌을 넘나들지만 별다른 무대 세트가 없다. 예술기획 놀이터의 박승준 기획팀장은 “무대가 황산벌로 전환될 때 배우가 ‘강이 굽이 흐르고 산이 솟아오르고’ 등 사설을 늘어놓으면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된다는 것이 판소리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판소리 공연은 이처럼 무대 세트 등에 돈을 들이지 않아도 관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제작비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변형이 가능한 텍스트의 보고=영화 ‘가루지기’와 연극 ‘옹녀이야기’는 판소리 ‘변강쇠전’을 변형한 작품. 가루지기는 변강쇠가 정력의 화신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옹녀이야기’는 변강쇠 사후 옹녀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다. 원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연극 ‘도화골 음란소녀 청이’는 효도의 상징적 존재인 심청을 색기 넘치는 여인으로 가공했다. ‘옹녀이야기’를 만든 프리즘엔터테인먼트의 박정희 실장은 “판소리 여섯 마당의 내용을 대부분의 관객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변형 가공이 가능해 더욱 확장된 텍스트를 펼칠 수 있고 실험적인 형식을 써도 이해가 빠르다”고 말했다.

▽탁월한 감성 표현=정조시대를 다룬 연극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를 만든 극단 연극미의 유종진 기획은 “판소리는 감성적 대사를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고 말했다. ‘조선의 뒷골목…’ 중 기생 명월을 묘사하는 대목이 대표적. “복스러운 얼굴에 발그레 홍조를 띠고 비단 같은 머릿결 쫑쫑따 고운 옥장식 말아서 올려버리고….” 고저장단과 리듬이 실리기 때문에 관객에게 전달도 용이하고 풍부한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의 에너지까지 수용하는 시너지 효과=연극 ‘척척생겨’는 병사들이 무기를 손질하는 부분이나 김유신에게 화살을 쏘는 부분 등에서 함께 노래와 율동을 하고 추임새도 넣으면서 관객들이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박승준 팀장은 “판소리는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 때문에 극에 몰입시키는 힘이 좋고 더욱 역동적인 연극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열등감 없는 2030세대가 주축=이자람, 극단 연극미의 단원들, 백연아 감독 등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고 있는 주축 세력은 대부분 2030세대다. 이들은 판소리를 분해, 재가공하며 판소리의 전통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 세대와는 다른 판소리의 가능성을 펼쳤다.

국악평론가 박소현 씨는 “이들은 전통 문화에 대한 접근부터 다른 세대다. 과거 세대가 서구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고 우리 것과 서구의 것을 분리된 시각으로 봤다면, 이들은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촉해 결합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