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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아직도 식지 않는 ‘극작가 윤영선’ 추모열기

입력 | 2008-10-09 02:59:00

극작가 윤영선의 작품 ‘여행’. 사진 제공 투비컴퍼니


연극이 끝난 뒤 나온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이거야 뭐… 미리 안 것 같잖아.” “제가 죽으려고 썼나 보다.” 웃으면서 농담하듯 말했지만 다들 코가 시큰해져 있었다.

극작가 윤영선 1주기 페스티벌 첫 작품으로 마련된 ‘여행’(13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의 공연 뒤였다.

윤영선(1954∼2007)의 ‘여행’은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의 부음을 듣고 빈소에 모인 다섯 친구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들이 대화를 나누는 중 지위와 재산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미묘한 균열이 생긴다. 작가가 찾아내는 것은 그 균열을 봉합하는 중년 사내들의 따뜻한 정이다.

“영선이 형이 정이 많았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밤을 새우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연극하는 사람이라 술 좋아하는 건 당연했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늘 코가 새빨갰죠.” ‘여행’의 연출가 이성열 씨의 얘기다. 사람 좋아하는 이 연극인을 연극인들도 매우 사랑해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상가는 사흘 내내 북적거렸다. 이번 1주기 페스티벌도 그를 사랑한 연극인들이 앞다퉈 마련한 자리다. 공연뿐 아니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입구 앞에 사진전을 꾸미고, 미발표 희곡을 포함한 ‘윤영선 희곡집’을 출간해 ‘페스티벌’ 분위기를 낼 참이다.

그의 연극은 선하고 정겨운 한편 실험적인 도전정신으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는다. ‘키스’(10∼1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그렇다. 글쓰기에 우보(牛步)인 그였지만 이 작품만은 일필휘지로 만들어냈다. 여관방에 누워 있다가 느닷없이 떠오른 발상으로 작품을 완성한 시간은 2시간. 남자와 여자가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드러나는 소통의 부재는 쓸쓸하다. 남녀가 나누는 시 같은 대사들은 그를 일컫던 ‘연극계의 시인’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형이 대학 다닐 때 매일 시를 한 편씩 썼어요. 등단도 했다던데, 친구들과 연극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계에 나왔죠. 그래도 늘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시가 내 글쓰기의 원형이다’라고요.”

나무를 너무나 좋아해서 죽기 며칠 전 자신의 이름을 ‘나무윤영선꽃’으로 개명하겠다고 한 시적인 극작가. 쉰세 살, 한창 왕성하게 작품을 쏟아낼 시기에 작품 ‘임차인’(17일∼11월 9일, 정보소극장)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