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독일 요리올림픽 한국대표 ‘수라’팀 출사표
그곳엔 이용대 선수의 ‘살인 윙크’도, 장미란 선수의 우렁찬 기합 소리도 없다. 2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 모인 여섯 명의 아저씨들. 평균 나이 40인 이들은 하얀 앞치마를 곱게 두르고 칼질에 여념이 없었다.
올림픽 훈련을 한단다. ‘접시 깨기’ 올림픽에라도 나가는 걸까. 해답은 ‘고추장과 케첩이 어우러진 메로(비막치어) 구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일본의 메로를 고추장에 비비면 절묘하지 않을까요? 된장 소스로 만든 마들렌을 후식으로 내고…. 이렇게 동서양의 음식을 섞는 연습을 한 지 4년이 됐죠.”(조우현·45·플로라 레스토랑 대표)
이들은 19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리는 ‘2008 세계 요리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 요리사. 4년 전 한국조리사회중앙회의 대표팀 공개모집에서 선발됐다.
1900년에 처음 시작해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에 우리나라는 1992년에 처음 출전했고 이번이 네 번째다. 과거 3번 모두 이렇다 할 성적을 못냈다. 하지만 ‘한국 하인즈’의 후원금 3000만 원을 받은 대표팀의 이번 목표는 57개 참가국 중 종합 10위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요리를 하자’고 했어요. 서양 사람들이 김치를 만든다 한들 평범한 한국 어머니의 맛을 따라올 수 있을까요. 우리 고유의 식재료를 바탕으로 퓨전 요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죠.”(한상석·33·웨스틴조선호텔 코엑스점 조리사)
대회는 찬 음식 3코스와 더운 음식 1코스 등 총 4코스로 이뤄진다. 각 코스에서 금, 은, 동메달이 나뉘며 종합 성적은 코스별 점수를 합산해 낸다. 찬 음식 3코스는 뷔페와 디저트, 채식, 60cm 이상의 ‘쇼 피스’ 음식 등 각각 다양한 요리를 가로 세로 4m의 테이블에 전시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코스는 더운 음식이다. 5시간 동안 6명의 요리사가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의 코스 요리를 110인분이나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임금님 수라상처럼 최고의 밥상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아 ‘수라’라는 대표팀 이름도 지었다. 음식은 메로 구이를 비롯해 ‘데미그라스와 한우의 만남’, ‘막걸리 소스 샐러드’, ‘홍삼 무스 초콜릿’ 등 70가지가 넘는 한국식 퓨전을 준비할 계획이다. 300가지 이상의 식재료에 접시, 테이블 등 소품을 다 합치면 무게가 1t이 넘는다.
그토록 꿈꾸던 대회지만 지난 4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특히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야 연습을 시작해 잠 한숨 못 자고 출근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가족에겐 ‘여보 먼저 자’, ‘아빠가 미안해’ 등 눈물겨운 문자메시지 보내기도 필수였다. 그래도 ‘요리는 정직하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팀 내 유일한 총각인 김재환(34·코엑스인터컨티넨탈 서울) 요리사가 이용대 선수의 ‘살인 윙크’ 못지않은 수상 세리머니를 공개했다.
“메달 따면 수상 소감으로 여자 친구에게 청혼할까 봐요. 하하. 한국 요리로 세계무대에 우뚝 설 그날을 생각하며 졸린 눈을 비벼야죠.”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