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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뷰티]‘무공해 성분’ 찾아 지구 끝까지

입력 | 2008-10-10 02:54:00


■화장품업계 원자재 전쟁

《오늘도 언제나처럼 화장대 앞에 앉아

젊고 아름다워질 채비를 하는 당신.

스킨, 로션, 에센스, 크림, 아이크림, 수분크림,

선블록크림, 핸드크림…. 잘 짜여진 코스요리처럼

올망졸망 늘어선 기초 화장품이 습관처럼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당신이 무심코 사용해 온

이들 기초 제품의 출신지가 최근

‘장난 아니게’ 진화하고 있다.

‘히말라야 빙하수로 만든(라네즈),’

‘320m 수심 해양 심층수로 만든(슈에무라),’

‘남극 빙하 및 호주 사막식물 추출물로 만든(키엘),’

‘아프리카, 인도, 마다가스카르의 사막식물로 만든(프레쉬),’ ‘칼라하리 사막의 식물 추출물로 만든(시슬리),’

‘유라시아 지역 꿀풀 줄기세포로 만든(아이오페),’

‘모로코의 야생나무로 만든(헤라)’….

2008년 당신의 화장대는

하나의 ‘작은 지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최근 세계 화장품 업계에서는 ‘지구 탐험대’를 방불케 하는

성분 탐사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 m 깊이의 바다 속부터

사막, 남극, 히말라야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좋은 성분이 있다는 곳이라면 이들은 어디든 찾아간다.》

● 산으로, 바다로… ‘자연의 선물’을 찾아라

지난해 라네즈의 신제품 개발팀은 화장품의 기본이 되는 ‘좋은 물’을 찾다 급기야 히말라야 산까지 올랐다. 이들이 찾은 곳은 세계 3대 장수(長壽)촌으로 알려진 훈자 지역. 연구팀은 이 지역 사람들이 오래 사는 비결이 히말라야 빙하수에 포함된 미네랄에 있다고 분석, 이를 원료로 한 화장품 개발에 착수했다.

오지인 이곳의 물을 공수(空輸)하기 위해 파키스탄 카다치 항구까지 육로를 개척하고, 빙하수 안의 미네랄 성분을 피부 세포에 안전하게 침투시킬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등 연구개발(R&D)을 진행했다.

최근 출시된 라네즈의 기능성 수분 제품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발됐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라네즈뿐 아니라 에뛰드, 코리아나도 각각 알래스카, 알프스 빙하수를 활용한 신제품들을 선보이는 등 국내 화장품 업계의 성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최근 새로운 화장품 원료를 찾기 위해 히말라야 산악 지대를 다녀온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소의 채병근 연구원은 “사람도 살 수 없는 극한 환경의 오지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에는 피부 생명력을 높일 수 있는 강인한 성분들이 다량 함유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름도 특이한 이들 식물 등에서 채취한 성분들은 그 희소성만으로도 광고나 마케팅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다채로워지는 화장품 업계 성분 전쟁

일본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다른 물’, ‘다른 성분’을 강조하는 화장품들이 등장했다.

특히 일본 화장품 업계가 주목한 것은 바다 속 깊은 곳의 물, 해양 심층수다. 200∼4000m의 깊은 바다를 대류(對流)하는 해양 심층수는 각종 미네랄과 영양 염류가 다량 농축돼 있는 청정한 물로 알려져 있다.

해양 심층수를 활용한 화장품의 원조(元祖) 기업으로는 슈에무라가 꼽힌다. 이 회사는 1995년부터 일본 고치현 무로토 만에 공장을 세우고 320m 이상 깊이의 바다 속 심층수를 직접 채취해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슈에무라 해양심층수 연구소에 따르면 해양 심층수의 무기질 함유량은 일반 미네랄 워터의 1000배 수준이다.

슈에무라는 1997년 해양 심층수의 피부 보습과 영양 공급력을 강조한 ‘딥 씨(Deep sea)’ 라인 제품들을 선보여 지금까지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해조류 추출 성분이 들어있는 화장품 또한 큰 인기다. 해조 추출물에는 피부 성분과 유사한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필수 아미노산 등이 풍부하다는 것이 화장품 업계의 설명이다.

● 탐험가의 옷을 입은 화장품 연구원들

극지의, 오염되지 않은, 고(高)영양 희귀성분을 찾아내려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의 노력은 신성분 발굴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탐험대’ 구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빙하 당단백질 추출물과 사막 식물 추출물을 함유한 고(高)보습 제품으로 호평받는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 키엘은 몇 명의 탐험가로 구성된 일명 ‘성분 발굴팀’을 운영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에서 키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오은주 차장은 “이들은 세계 각지를 돌며 현지에서 오랜 기간 효능을 인정받은(time-proven) 천연성분들을 발굴한다”며 “현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인삼이나 창포 같은 식물들이 그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발굴한 자연물들은 R&D 파트로 넘겨진다. 이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성분 기능성과 피부 안전성 등을 연구해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키엘의 인터내셔널 교육총괄 캐미 카넬라 부사장은 “1970년대 말 중국 탐방에서 찾은 독특한 허브 성분은 현재까지도 하버드대 의대와 협력해 제품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들을 소유하고 있는 로레알,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기업들은 브랜드별 R&D센터를 운영하며 피부 및 식물의 세포 배양 등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라네즈 제품개발팀의 안성연 연구원은 “원료의 희소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부 세포에 적절한 형태로 성분을 가공하는 R&D 능력”이라며 “성분의 안전성과 피부 적용력을 높이는 기술이야말로 화장품 브랜드 경쟁력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