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있다.
미국의 사상 최대 구제금융법안도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으로 끝났다. 강 건너 불 보듯 한 유럽도 이번 주 들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아이슬란드는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 이르렀고 아일랜드와 독일에 이어 포르투갈까지 줄줄이 예금보호를 선언하고 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미 연방은행이 사상 유례없이 기업어음을 직접 매수하겠다고 나섰지만 시장은 폭락했다. 여기에 55조 달러에 달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의 청산이 잘못되면 그야말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사망선고’가 떨어질 판이다.
우리나라도 참담하다. 외환시장은 이미 아비규환 상태다.
환율은 올라가고 주가지수는 떨어져 결국 환율과 주가지수가 역전되는 ‘그랜드 크로스오버’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농담이 현실화됐다. 당국의 거듭되는 설명과 노력에도 시장은 마이동풍이다. 이제 서로 공포에 질린 얼굴을 쳐다보면서 다시 공포에 질리는 공포의 무한확대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시장 참가자들의 시야는 시속 250km 이상으로 달리는 카레이서의 시야 정도로 좁아진다. 카레이서의 말을 빌리면 그 속도에서는 시야가 야구공만큼 작아진다고 한다.
이 와중에 전문가들은 “현금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다. 더 폭락할 수 있으니 남은 것이라도 건지라는 뜻이지만 결국 “반 토막 난 자산을 땡 처리하고 깡통 차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논리적으로 현명한 조언은 아니다.
지난해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은 천문학적이다. 또 금융위기를 해결할 때까지 퍼부을 유동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체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로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신뢰가 회복될 때 글로벌 금융시장은 유동성에 파묻힐 것이다. 즉 현금가치 특히 달러와 유로화가 폭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 외국 언론은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을 사상 최고로 비싼 ‘심리치료제’라고 표현했다.
공포의 실체는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다는 파생상품이 아니라 겁에 질려 야구공만큼이나 작아진 시야에서 나오는 인간심리의 비합리성이다. 불과 몇 개월 전 유가가 오늘의 환율처럼 미친 듯이 폭등해 147달러에 이르자 전문가들은 곧 유가가 200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유가는 수직낙하하더니 이제는 50달러까지 떨어질 것을 운운하는 지경까지 왔다.
외환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의 최악의 순간은 3개월을 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