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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한글날이 더 서러운 한글학회

입력 | 2008-10-10 02:58:00


“한 민족이 말만 있고 글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로마자 때문에, 한자 때문에 한글이 죽어서야 민족의 발전도 없습니다.”

한글날인 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글학회 건물 강당에서 훈민정음 반포 562돌 기념식이 열렸다. 한글학회의 발전과 한글 사랑운동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시상한 이날 행사에서는 우리말의 현실에 대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승곤 한글학회장은 “한글학회 창립 100돌을 맞은 올해 한글날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말로 기념사를 시작했지만 이내 우리말이 영어 등 외국어에 치이는 상황을 얘기하며 톤이 높아졌다.

“로마자와 한자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말 그대로 ‘아버지’ ‘어머니’라 쓸 수 있는 것은 한글밖에 없습니다. 외국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유치원생, 초등학생에게까지 영어를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까.”

김 회장은 “입사시험 때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대우해 주지 않으니 국어는 뒷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1977년 한글학회 건물을 지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재를 털어 1억 원을 내놓은 이후로 여태껏 우리 학회를 지원해 준 대통령은 없었다며 정부 지원이 미흡하다고도 했다.

한글재단 이사장 이상보 국민대 명예교수는 “우리말과 글의 사기가 흐트러져 있다”며 “정부와 국회, 사회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려 우리 말글을 아끼고 가꿔 나가야 우리 말글의 사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기념식을 지켜보며 한 초등학교 교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국어는 좀 못해도 영어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가 많다”며 “부모가 그렇게 얘기하고 방송에서도 영어 얘기뿐이니 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인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말이 뒷전에 밀리는 세태는 교보문고의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나타난다. 10위 이내에 1, 2, 8위가 영어 교육 관련 책이다. 100위까지 보더라도 14권의 영어 교재가 포함됐지만 우리말 교육과 관련된 교재는 단 한 권도 없었다.

우리말에 대한 홀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민간 한글연구단체인 한글학회의 장탄식이 이날따라 더 길게 들렸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