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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시는 곧 자화상… 시인이 늙으면 시도 변해”

입력 | 2008-10-11 02:56:00


유안진 시인 4년 만에 신작 출간

◇거짓말로 참말하기/유안진 지음/140쪽·7000원·천년의 시작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 상상력으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힘이다. 유안진(67) 시인이 이런 문제의식에서 움터 올린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천년의 시작)를 펴냈다. ‘다보탑을 줍다’ 이후 4년 만의 신작이자 열세 번째 시집이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유 시인은 “시는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감추다 끝에서야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아기들에게 ‘요놈, 밉다’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누구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시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허구와 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그의 시들은 편안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황홀한 거짓말’들이 어울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진실을 오롯이 솎아낸다. 마음이 어지러워 기도 응답이 들리지 않을 땐 귀에 운동화를 신겨 하늘 문 앞에 달려가 보기도 하고(‘운동화, 귀에 신기다’), 꿈속에서 좋고 행복한 것을 잘 보기 위해 잠을 청할 때 공들여 안경을 쓰기도 한다(‘안경, 잘 때 쓴다’). 신선하고 풍부한 역발상은 시 감상의 즐거움을 더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는/사고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젊음만 가버리는 줄 알았는데/마음만 변하는 줄 알았는데//…금붕어 한 마리를 어항에 넣었더니/어항주둥이가 지느러미가 되었다/장미 한 송이를 꽃병에 꽂았더니/푸드득 소리가 났다’ (‘눈 깜짝할 사이’)

진실과 거짓의 역설적이고 상호 통합적인 관계에 대한 그의 성찰은 날카롭지만 담박하다. ‘세상은 진실이 거짓말하는 곳이니까/나는 거짓이 진실을 말하는 세상을 만들었지’(‘거짓 세상, 홈피’)라고 터놓거나 ‘잠결에 하는 말이 더 진담이고/코로 부르는 노래가 더욱 눈물겨운데/…/비정상이 정상인데, 다수의 횡포야’(‘지극히 정상적인’)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유 시인은 “‘시인은 거짓말쟁이다. 하지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거짓말쟁이다’란 말이 있다. 이번 시집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결국은 이 문장으로 대변될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이 넘게 시를 써온 유 시인은 아직도 매주 수요일 동료 문인들과 치열한 합평회를 가진다.

“피카소는 6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려 했다지요. 변하지 않는 것은 작가 정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시는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시인이 변하면 시도 달라져야죠.”

유 시인은 2006년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직을 접은 후 전업시인으로 지내고 있다.

그는 “시 쓰는 것은 아무래도 중독인 것 같다”며 “내년 3월에는 민속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