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상/백무산 지음/176쪽·7000원·창비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문명의 혜택과 자본의 풍요가 더해질 때 소외되고 야위어 가는 것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인간들이 무엇을 상실하고 지나쳐버렸을까. 백무산 시인은 일곱 번째 시집을 통해 하염없이 슬프고 그리운 것들의 초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내가 계산이 되기 전까지는//…나는 대지의 말을 받아 적을 수 있었습니다/내가 부동산이 되기 전에는//나는 숲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내가 시계가 되기 전까지는//…그들과 말 놓고 살았습니다/나도 그들처럼 소용돌이였습니다.’(‘나도 그들처럼’)
1980년 시작(詩作)을 시작하면서 노동문학에 서 있었던 시인은 이념문제가 희박해지고 저항의 목소리가 사라진 세계의 쓸쓸함을 시의 언어로 하나씩 주워 올린다. 한때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울분과 투쟁의 기지였던 대학엔 천막농성 중인 학내 노동자들을 향해 시끄러워 공부 못하겠으니 나가달라는 학생들의 거친 항의만 남았고(‘저 높은 곳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외면하는 노동자들의 혹독한 현실 속에 남은 것은 치욕뿐이다.(‘치욕’)
변방의 풍경과 그곳의 삶에 대한 시인의 관심도 종요롭게 이어진다. 약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이들의 남루한 일상 속에 우리의 기만이 엿보이고, 허허롭고 소박한 희망 속에는 질긴 삶을 이어가는 시큰한 눈물이 내비친다.
‘나도 이제 얌전하게 넥타이 한번 매고 싶다/…나도 올해엔 반들반들 구두도 닦아 신고/경운기 짐칸에 똥 누는 폼을 잡고 앉아/들바람에 넥타이 잔뜩 휘날리며/읍내 예식장에라도 가고 싶다/…우즈베끼스딴 신부 만나 벙글거리는 그 사람에게/손바닥 아프도록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나도 넥타이 매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