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불안감이나 공포를 의미하는 패닉(panic)의 어원은 그리스의 신(神) 판(pan)에서 나왔다. 얼굴은 뿔이 달린 인간이고 몸체는 호색적(好色的) 염소로 묘사되는 판은 극단적 공포심을 유발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다. 고대 그리스인은 가축들이 무엇인가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판의 장난으로 여겼다. 공포를 가축 떼와 연결한 것은 그럴듯한 상상력이다. 공포에는 강한 전염성이 있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을 통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닉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지만 이런 현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있다. 이슬람교도가 평생 한 번은 해야 한다는 메카 순례인 하지(haji)에서다. 1990년 1400명을 필두로 매년 평균 250명이 압사사고로 사망한다. 특히 악마를 형상화한 ‘악마의 기둥’ 3개에 돌을 던지는 의식 도중에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다. 제일 앞줄의 순례자가 돌을 던지기 시작한 뒤 모든 순례자가 돌을 던지게 되는 과정에서 순식간에 패닉 상태가 일어난다. 매년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독일에서 패닉 전문가를 초청할 정도이다.
▷주식 하락장에서 투매(投賣) 같은 패닉이 일어나는 까닭은 사람들이 이익보다는 손실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출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탄 대니얼 카너먼은 프로스펙트 이론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예컨대 1000원을 놓고 1000원을 먹는 게임을 할 경우 사람들은 돈을 걸지 않는다. 양쪽의 액수가 같더라도 손실의 절대치를 이익보다 2∼2.5배 크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를 ‘손실 회피성’이라 한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한 뇌 분석에서도 이익보다는 손실을 볼 때 뇌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가 패닉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다. 환율이나 주가의 변동추이를 보면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보다도 진폭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당국의 대응 잘못도 있지만 시장참여자들의 심리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실체도 없는 광우병에 온 국민이 패닉에 빠진 전례도 있지 않은가. 금융시장의 요동에 심리적 요인이 크다면 해법은 바로 불안심리를 누그러뜨리고 정부가 신뢰를 얻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