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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2년 英‘메리로즈’호 인양

입력 | 2008-10-11 02:56:00


1982년 10월 11일 ‘메리로즈’가 437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절대군주 헨리 8세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군함의 인양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오전 7시, 헨리 8세 때 축성된 사우스시 성(城)이 대포 발사로 역사적인 순간을 알렸다.

헨리 8세는 1509년 왕위를 계승한 뒤 해군 전력 정비에 총력을 다했다. 중세 영국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꿈이 깃들어 있었다.

1511년 한쪽 현측 대포를 일제히 발사할 수 있는 500t급 메리로즈호가 완성됐다. 왕의 여동생 메리 튜더와 튜더 왕조의 상징인 장미에서 각각 단어를 따 이름을 지었다. 메리로즈는 ‘수상 요새’이자 해군 전함인 독특한 존재였다.

이 군함은 30여 년 동안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1545년 프랑스 함대와 교전 중 침몰했다. 선원 400∼5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사학자 상당수는 사고 원인을 단순한 조작실수로 보고 있다.

메리로즈에 대한 수색과 인양은 해양고고학사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었다.

“매력적이고 희귀한 튜더 양식의 배를 인양하는 일은 상상의 세계에서나 붙잡을 수 있는 꿈의 완성이죠.”(마거릿 룰·메리로즈호 인양 프로젝트 고고학 분야 담당자)

복잡한 인양 장치, 비고정식 진수대의 기술적 결함으로 두 차례나 작업이 미뤄지는 등 인양 과정은 지난했다. 침몰선의 골격에 걸어둔 인양 도구가 늑재를 부쉈고 연결선이 끊어지면서 80t에 이르는 인양 장치의 일부가 낙하해 선체를 짓이겨 놓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 ‘메리로즈 트러스트’의 회장인 찰스 왕세자는 이렇게 말했다.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것, 당황하지 않는 것이 영국답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본토와 와이트 섬 사이의 해협, 해저 15m에서 메리로즈는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채 묵묵히 기다려줬다.

이제 포츠머스 역사조선소 내 메리로즈박물관에서 메리로즈의 면면을 만나볼 수 있다. 복원한 메리로즈호를 비롯해 주사위 활 소총 칼 등 선원 용품과 무기 1만여 점이 16세기의 이야기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들려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