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 GS칼텍스 등 최근 고객 정보를 유출한 대기업과 대형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집단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집단소송이 피해자들의 권익 회복보다는 변호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업들의 정보유출 사건은 대부분 피해규모가 1000만 명을 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보를 유출당한 개인들은 당장 피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먼저 변호사를 찾아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변호사들이 먼저 인터넷 카페 등을 만든 뒤 "1만~3만 원가량의 수임료를 납부하면 상당액의 피해 보상을 받아 주겠다"고 광고할 경우 '로또'를 사는 기분으로 이에 응하는 개인들이 모인다.
옥션, GS칼텍스 등의 사건은 모집단이 1000만 명 이상으로 크기 때문에 이중 1%만 기획 소송에 참여해도 변호사들은 승패에 관계없이 수억 원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또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기 때문에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업체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인 A변호사는 2만여 명으로부터 모두 7억원, B변호사는 10만여 명으로부터 모두 10억원 가량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 소송을 제기 하기 위해 일부러 고객정보를 유출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최근 검찰은 GS칼텍스 고객 1100여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GS칼텍스 자회사 직원과 한 법무법인 사무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정보 유출 사실을 언론에 알린 뒤 집단 소송을 통해 함께 수익을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기획소송을 진행 중인 변호사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잡일이 많고 인지대와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이런 소송으로 큰 돈을 버는 일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인 C변호사는 "원고 수만 명 중 일부만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해도 이들을 응대하느라 다른 일은 할 수 가 없다"면서 "유명한 사건을 대리해 지명도가 올라가는 등 무형의 이익은 바랄 수 있으나 이런 소송으로 돈 방석에 앉는 변호사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집단소송을 진행 중인 D변호사는 최근 환불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D변호사가 승소 실적으로 내세운 집단소송에서 법원은 원고들에게 1인당 10만~2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까지의 수임료 6만원과 30%의 성공보수를 제외하면 실제 원고들이 받은 돈은 1만~8만원에 그쳤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게다가 예상보다 소송이 길어지자 일부 원고들이 모여 환불을 요구하는 카페까지 개설한 것이다.
집단소송에 참여하는 원고들도 고객 정보 관리에 소홀한 기업에 대한 '징계' 보다는 '돈 놓고 돈 먹기'에만 관심이 있어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언론에 크게 소개되는 사건만 골라 집단 소송을 제기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세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GS칼텍스의 경우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나 이 정보가 악용된 피해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변호사들이 법리적인 증거를 수집하지 않은 채 소송인단을 모집한다면 '한탕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