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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힘내라 한국영화’

입력 | 2008-10-13 02:57:00


지난주 폐막된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역대 최다인 19만8800명의 관람객이 모였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쾌청해 영화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축제의 활기는 전만 못했다. 개막 당일인 2일 아침 배우 최진실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기업 협찬금이 줄어든 탓에 5억 원 적자가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국내 영화계의 장기 침체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올해 영화제는 ‘힘내라 한국영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초창기 모험에 가까웠던 부산영화제가 예상을 깨고 성공하면서 한국영화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 기간 중 열린 세미나에서 강한섭 영화진흥위원장이 ‘대공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한국영화의 상황은 심각하다. 투자 자본이 떠나고 제작 편수가 격감하고 있다. 강 위원장의 ‘대공황’ 발언은 비관론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따랐지만 ‘내년과 후년에도 정상화되지 않으면 영화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예측은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영화 불황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관람객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더라도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늘어났다. 신종 미디어의 등장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관객층은 훨씬 생동감 있는 뮤지컬 등 공연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영화계가 그간의 호황을 잘 활용하지 못한 채 ‘영화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내분을 계속한 탓도 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상상력의 한계다. 영화 말고도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홍수를 이루는데도 기존 작품들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영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관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 홍콩의 왕자웨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의 젊은 팬들이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이것이 한국 영화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런 관객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일부 영화인들이 빠졌던 ‘이념지향’에선 벗어나야 한다. 예술에서 이념은 독소다. 사회주의 국가에 예술다운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영화계가 상상력을 원한다면 이념과 거리부터 둘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