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 철강 → 車 → 반도체 → ? …‘제2 한강기적’ 이끌 엔진 찾아라
한국 GDP규모 15년간 11~13위…성장동력 고갈 위기
전문가 “경제규모 걸맞은 선진국형 구조로 전환 시급”
盧정부 ‘차세대 성장동력’ 시장창출 간과 추진력 잃어
李정부 규제완화-선제투자로 민간참여 적극 유도해야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이하,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전력 산출량은 멕시코의 6분의 1 수준, 수출은 2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 이래서 한국의 경제적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
미국 외교협회(CFR)가 발간하는 격월간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는 1960년 한국 경제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이후 약 50년간 한국 경제는 이 같은 전망을 무색하게 하듯 빠른 성장을 했다.
선진국이 100년 넘게 걸려 이룩한 산업화를 한국은 30∼40년 만에 실현하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조선과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반도체, 자동차 등의 산업은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 1∼5위에 포함될 만큼 경쟁력도 확보했다.
하지만 고도성장을 접고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이 적잖게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제성장을 이끌던 주력 산업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動力)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학연(産學硏) 전문가로 구성된 신(新)성장동력기획단이 최근 에너지·환경과 수송시스템 등 6대 분야, 22개 신성장동력 사업을 확정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성장동력의 확충은 더는 늦출 수 없는 일인 만큼 시장 창출을 위해 정부가 선제적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점점 고갈되는 성장동력
한국의 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993년 세계 12위에 오른 뒤 등락을 거듭하면서 2004년 11위로 한 단계 ‘전진’했다가 2006년 러시아, 2007년 인도에 각각 추월당하면서 13위로 ‘후퇴’했다.
이처럼 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15년간 11∼13위를 맴돌고 있는 주요 원인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섬유, 1970년대 철강과 기계, 1980년대 자동차와 전자, 1990년대 반도체와 컴퓨터 등 기존 주력산업은 시기를 달리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성장을 이끄는 뚜렷한 신산업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한국 경제 르네상스를 위한 구상’ 보고서를 통해 “국가와 기업 모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경제 규모에 맞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최근에는 △지식기반 경제의 도래 △에너지와 환경문제의 대두 △저출산과 고령화 등에 따라 경쟁 환경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기존 경제성장 전략의 실효성도 상당 부분 상실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적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롤랜드 빌링어 서울사무소 대표가 지난해 11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시장 규모와 성장성 면에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 한국 경제 재도약하려면
경제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신성장동력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의 공과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노무현 정부 역시 성장동력의 확충을 시급한 과제로 보고 출범 초기 10대 성장동력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국정 어젠다로 힘을 받지 못하고 부처별 연구개발(R&D) 과제 수준으로 격하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기술개발에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시장 창출에는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신성장동력 육성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과 시장 창출 과정에서 민관(民官)의 역할 구분이 명확히 설정돼야 한다는 충고인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신성장동력 사업에서 정부의 역할은 우물에서 펌프질을 하기 전에 한 바가지 먼저 넣어주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며 “민간이 나서기 어려운 분야에 정부가 좀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 투자를 해야 민간 투자가 촉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단순히 특정 기술을 정해 R&D 자금을 투입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위해 규제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점검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성장동력 사업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주량 신산업연구실장은 “(신성장동력기획단이 확정한) 22개 사업은 너무 많다”며 “국가에서 드라이브를 거는 사업은 3, 4개 정도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집중 육성과 유지 발전, 민간 주도 등으로 좀 더 세분해 선택적이면서 차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생명공학 - 에너지 - IT… 선진국들 사활 건 투자 ▼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도 향후 10년 내 세계 시장에서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을 선정해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 에너지 분야는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바이오·보건의료와 환경기술 분야도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은 민관(民官)이 함께 첨단소재·화합물, 생명공학, 전자·컴퓨터·통신, IT, 제조, 기타 등 6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첨단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영리기업이 연구 과제를 기획해 제안하면 대학과 비(非)영리 연구기관들이 협동 연구자로 참여하는 구조로 목표를 상업화에 두고 혁신 기술을 상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기술 개발을 하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예산은 13억 달러였다.
일본 정부는 2004년부터 연료전지, 정보가전, 로봇, 콘텐츠 등 첨단산업 분야와 건강·복지, 환경·에너지 기기 및 서비스, 비즈니스 지원 서비스 등 앞으로 늘어날 사회 수요에 대비하는 산업 분야 등 모두 7개 분야를 육성하는 ‘신산업 창조전략’을 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래 유망사업뿐 아니라 현재 일본이 우위를 보이는 기존 산업까지 포함해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2002년 4개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양조쌍성(兩兆雙星) 산업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 영상 디스플레이 분야를 강화하는 양조계획과 신규 유망 산업인 디지털콘텐츠, 생명공학 분야를 발굴 육성하는 쌍성계획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신성장동력 사업을 육성하려면 △실용화할 수 있고 기업이 원하는 기술 중심으로 △기존 주력 산업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첨단 산업의 균형을 맞춰 △사업화와 수익 창출, 재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식경제부 당국자는 “선진국들의 미래 성장동력 프로그램은 민간부문 투자와 창업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민간부문의 기술 개발을 유인하기 위한 기금 조성이나 시장 창출을 위한 정책들은 참고할 점”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