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최고로 잘생긴 남자 배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장동건(36)이다. 가히 ‘국보급’ 얼굴. 끝내주게 잘생겼다. 그런데 장동건은 이런 빼어난 자기 얼굴을 ‘극복’하려 한다. 자신을 한계지우는 외모의 벽을 넘어 진정한 연기자로 자리 잡고자 한다. 장동건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을 한계 지우는 ‘외모의 벽’ 넘으려 집착
연기력 이미 탄탄… “팬들에 환상 심어줬으면…”
장동건의 필모그래피를 보자. 그의 연기인생에 전환점이 된 영화는 단연 ‘친구’(2001년)다. 빡빡 깎은 머리에다 비딱하고 반항적인 눈빛을 가진 조폭 2인자로 나온 그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투박하고 살벌한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람들은 장동건을 두고 “잘생겼다”는 말만큼이나 “연기 잘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장동건에겐 약이자 독이었다.
‘친구’ 이후 그의 출연작을 살펴보자.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년) ‘해안선’(2002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태풍’(2005년) ‘무극’(2006년). ‘2009 로스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매우 흡사한 캐릭터들이다. 모두 깊은 한(恨)이나 섬뜩한 광기를 지닌 ‘미친’ 캐릭터인 것이다. 그는 정신적 상흔을 지닌 사회적 소수자로 출연하길 선호했다. 여기서 장동건 내면의 일단이 읽힌다. 그는 이제 ‘얼굴로 먹고사는’ 배우가 아니라, 강한 이미지와 강한 연기를 통해 ‘진짜 배우’임을 증명하고자 한 듯하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장동건은 잘못 가고 있다. 끝내주게 잘생겼으면 잘생긴 값을 하고, 잘생긴 덕을 200% 누려야 한다고 본다. 장동건은 다른 배우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의무’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는 끝내주는 외모로 사람들의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들 의무가 있다. ‘장동건은 화장실에도 안 가고 무말랭이도 안 먹고 발 냄새도 안 날 것 같은’ 완벽한 환상을 팬들에게 심어줄 의무가 있다. 장동건은 고단한 현실을 사는 ‘민간인’들에게 비현실적인(나아가 초현실적인) 꿈을 심어줘야 한다.
난 그가 더 멋지고 더 잰 체해야 한다고 본다. 덜 수수하고 더 까다롭게 보여야 한다고 본다. 못생긴 배우들보다 옷도 더 멋지게 입고(요즘 너무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는 경향이 있다), 행동도 더 멋지게 하고, 말도 더 멋지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그는 수많은 CF에 마구잡이로 출연해서도 안 된다. 최근 본 CF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동통신사와 맥주 광고였다. 동료 남자배우들과 야구팀을 이룬 장동건이 이들과 친밀하게 뒤섞인 채 버스 뒷좌석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 힙합 가수 크라운제이와 머리를 맞대고 건배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난 가슴이 찢어졌다. 게다가 고추장 광고에까지 나와 우리들의 판타지를 손수 깨버릴 필요는 없었다.
장동건이여,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 당신은 비현실적인 환상 속의 존재다. 왜 인간들과 섞이려고 하는가? 왜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는가?
잘생긴 배우들이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착각이 하나 있다. ‘진짜 배우’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같은 작가주의 영화에 상상할 수 없는 ‘푼돈’을 받고 출연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이런 욕망의 발로다(미남 배우 강동원이 난해하고 소수자적인 이명세 감독의 최근작에 연속 출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태풍’에 장동건이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탈북자로 나와 “동무, 사람고기 먹어본 적 있슴메?”라고 할 때, ‘무극’에 장동건이 슈퍼파워를 가진 일자무식 노예로 나와 떡 진 머리 휘날리며 ‘네 발’로 뛰어다닐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진짜 배우’란 건 없다. 잘생기면 잘생긴 대로,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모두 배우다. 나는 장동건의 연기력이 설경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경구는 잘생기지 않았기에 연기력이 더 빛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경구처럼 “나 돌아갈래!” “비겁한 변명입니다!” 하고 울부짖는(전문용어론 ‘지르는’ 연기라고 한다) 연기만이 연기는 아니다. 재수 없을 만큼 잘난 체하는 것도 연기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도 훌륭한 연기다.
대중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연기에 더 쉽게 감탄한다. 그리고 거기에다 ‘성격파 배우’란 명예로운 별칭까지 붙여준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송강호의 연기력에 정우성의 외모를 가진 배우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성격파 배우’라고 부를까 아니면 ‘미남 배우’라고 부를까? 물어보나 마나, 대중은 ‘미남 배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잘생긴 배우는 잘생긴 배우로서 짊어진 숙명이 있다. 탁월한 외모를 콤플렉스로 여기는 건 우리의 손실이고 대한민국의 손실이다. 장동건이여, 더 잘난 체하라! 더 멋진 체하라!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영상취재 : 김한준 동아닷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