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컬 푸드/브라이언 핼웨이 지음/시울
《로버트 소머즈는 고속도로에서 갓 수확한 토마토를 몇 미터 높이로 적재한 18륜 트레일러 뒤를 따라 운전한 적이 있었다. “트레일러가 시속 90km로 모서리를 돌자 토마토 몇 개가 트럭 위에서 떨어졌는데 도로에 맞고는 튀어 오르는 겁니다!” 얼마나 기묘한 장면인가!》
생물-문화 다양성 지키는 지역 먹을거리
‘먹을 음식이 없다.’ 이토록 풍요로웠던 시대가 없었음에도 우리는 역설적인 고민에 빠져 있다. 어디서 어떻게 재배됐는지, 누가 무엇을 첨가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수송됐는지 정체불명의 식재료가 넘치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유해한 음식을 피한다는 게 어려울 만큼 우리가 먹는 음식은 세계 식량 체계의 한 부분으로 편입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세계 식량 체계는 지역 생산자들을 소외시키고 소비자들에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음식을 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수송과 운반 과정에서 화석연료 에너지를 소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민간환경연구기관인 미국 월드워치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저자는 월마트를 예로 들며 이러한 대규모 체인슈퍼마켓들이 농민 간의 경쟁을 부추겨 수익을 저하시키고 지역의 소규모 상점을 도산으로 몰아감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체계하에선 공장의 효율성 논리를 도입한 산업형 농업 외 전통적인 가족농은 소멸되고 만다. 일부 지역에서만 농산물이 생산되는 것은 생물의 다양성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음식문화도 획일화해 지역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사라지게 한다.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로 요리할 수 있고 매번 정확하게 같은 맛을 내는 표준화된 제품’이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고 소비자들이 여기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식료품의 신선도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장거리를 이동한 음식물은 박테리아, 유전자조작, 잔류농약 등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인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하지 않는 샌드위치, 3층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토마토와 방부제를 친 음식을 우리가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각심을 일깨운다.
저자가 주목하는 대안은 지역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지역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로컬 푸드’다. 지역 먹을거리 영역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이 방법이 신선한 음식을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 내 인력을 고용할 수 있고 자금 순환도 원활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음식이 어떤 경로를 거쳐 밥상에 오르게 됐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도시농업(도시 주변에서 농업을 하는 것)이나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작된 농민장터(농민들이 직접 시장을 꾸려 소비자와 만나는 것) 등은 대안이 된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을 소개하며 인공의 속도가 아니라 자연의 속도에 의해 재배된 음식이 미치는 긍정적인 결과도 알려준다. 슬로푸드는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말이 아니라 생물,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역 먹을거리를 살리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운동이 학교급식 등으로 확산될 때 농민, 도시민뿐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바람직한 먹을거리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