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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피맛골 ‘신승관’ 옮겨갔지만…

입력 | 2008-10-15 02:57:00

44년 전통의 중국 음식점 신승관은 종로구 청진동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중구 북창동으로 옮겼지만 언제든지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피맛골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신승관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간판에서부터 조리 기구까지 273종의 물품을 기증받았다. 오른쪽 두 장의 작은 사진은 추후 복원 때 사용하기 위해 사진으로 찍어 둔 신승관의 내부 모습. 사진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44년 자취’는 그대로 남는다

국립민속박물관, 간판-그릇 등 모든 물품 기증받아 영구 보존

졸업식이나 운동회 날이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찾았던 동네의 중국 음식점. 자장면 한 그릇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의 자장면 집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는다.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하다.

재개발로 사라져 가는 서울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하다. 수십 년간 서민들의 눈과 입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던 청진옥, 한일관, 안성또순이집, 열차집, 장원집, 미진….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피맛골의 맛 집들은 인근 새 건물이나 다른 지역으로 속속 떠나고 있다. 맛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게 될 안타까운 추억이 현재 진행형으로 스쳐가고 있다.

44년 전통의 중국 음식점 ‘신승관(新昇館)’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신승관은 다른 집들과는 달리 추억 속이 아니라 ‘피맛골’의 신승관으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청진동 신승관을 영구 보존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승관은 1964년 청진동에 터를 잡았다. 이 집 문을 연 것은 3년 전 별세한 화교 장학맹 옹으로 그는 50여 년 전 중국 산둥(山東) 성에서 한국에 들어왔다. 신승관은 빼어난 음식 솜씨로 금방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특히 해삼탕에 동파육을 얹어 낸 ‘해삼주스’와 시금치 즙을 짜서 만들어 초록빛이 도는 물만두는 수십 년간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신승관은 셋째 아들인 장경문 씨에 이어 손자가 물려받아 3대째 가업을 이었지만 재개발의 광풍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올해 5월 중순 문을 닫았고, 몇 개월을 준비해 최근 중구 북창동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청진동의 가게를 정리할 즈음 국립민속박물관은 장 씨에게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기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종수 유물과학과장은 “식당은 많지만 신승관처럼 역사가 오래되면서 피맛골의 정취를 간직한 집은 찾기 힘들었다. 특히 중국 음식점에 대한 자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흔쾌히 이에 응했다. 주방기구와 의자, 탁자, 그릇은 물론이고 간판과 철가방, 매출 내용을 적은 장부, 예약 손님을 메모해놓은 수첩, 진열장에 있던 술병과 장식품 등 273점을 기증했다.

박물관 측은 여기에 식당 내부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에 꼼꼼하게 담아 언제든지 신승관을 복원할 수 있도록 했다. 기증품은 현재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장 씨는 “내 후손들이 중국 음식점을 운영했던 조상들의 삶과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아낌없이 기증했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렇게 모든 물품을 세트로 구비해 놓지 않으면 20, 30년만 지나도 현재의 중국 음식점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증받은 자료가 개별적으로는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이 지나면 당시의 생활상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치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향후 특별전이나 중국 음식점의 재현이 필요한 행사를 통해 피맛골의 신승관을 일반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영상취재 : 이제호 동아닷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