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뭐랄까…. 정신이 스며있어 그런지 편하고 그래요. 요즘 같은 가을엔 더욱 좋고요.” 13일 경북 경주시 천군동 보문관광단지 옆에 있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공원을 둘러보던 30대 부부는 “울산에서 가까워 한번씩 찾는데, 편안한 ‘사람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경주문화엑스포공원이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4월 365일 연중 개장을 한 뒤부터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상시 개장 이후 지금까지 22만 명이 공원을 찾았다.》
● 편안한 휴식 공원으로 각광
경주엑스포공원은 ‘편안한 사람’ 같은 분위기라는 게 관람객들의 일치된 목소리다.
이곳에서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라면 짧게 느껴지는 삶의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문화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공간도 마련돼 있다.
마음을 풀어놓고 가을의 정취와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 심심해지면 군데군데 가볍게 즐길 만한 공간도 적당히 섞여 있다.
공원에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고도(古都) 경주의 가을이 서라벌의 향기 속에 묻어 있다. 공원의 상징인 경주타워(높이 82m)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경주타워는 신라의 자부심이던 황룡사 9층 목탑의 꿈을 담아 지난해 8월 세웠다. 승강기에 들어가면 45초 만에 전망대에 올라 보문호수를 둘러싸고 조성된 보문관광단지의 시원한 풍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고개를 숙이면 약간 아찔한 느낌이 들지만 타워의 정원인 신라 왕경(王京) 숲이 평면도처럼 느껴진다. 하늘에서 서라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18만 m²에 신라 육부촌을 본뜬 육부림, 서라벌 계림을 재현한 왕경림, 포석정 모양의 분수대인 곡수원, 안압지 연못이 그림 같다. 보고 있으면 왕경 숲으로 조금씩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전망대에 오래 머무는 것은 좀 낭비다. 65m 높이에 꾸며놓은 신라문화역사관을 꼭 봐야 하기 때문이다. 뒤편으로 보문단지가 보이도록 좌대에 올려놓은 신라금관은 직접 써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100점이 넘는 신라의 문화재가 전시된 분위기 탓인지 절반 크기로 줄여 조각한 석굴암은 유리에 가려진 토함산의 진짜 석굴암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름 9m 크기에 오밀조밀한 모형으로 만든 서라벌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압축해놓았다. 관람객들은 “야! 옛날 서라벌은 이랬구나” 하고 감탄사를 한마디씩 발하기 마련이다.
● 역사와 문화에 어린이의 놀이공간까지
낮에는 보문단지 풍경으로 가슴을 툭 틔워주고 신라로 되돌아가도록 해주는 경주타워에 어둠이 깔리면 타워에서 뻗어나오는 레이저 빛이 경주의 밤을 수놓는 ‘문라이트(달빛) 레이저쇼’가 열린다.
경주타워는 낮과 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야누스다. 밤하늘을 향해 천년 세월을 관통하듯 뻗어나가는 빛줄기가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빛 속에 담겨있는 ‘용기’와 ‘희망’, ‘믿음’과 ‘사랑’을 읽어주세요”라는 메시지다.
역사와 유물은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어린이 손님들은 ‘3차원 애니메이션’ 상영관에 들어갔다 나오면 표정이 달라진다. 외국에 수출할 정도로 세련된 수준의 15분짜리 역사문화 애니메이션 4편을 보고서도 무덤덤한 아이는 찾기 어렵다.
초등학교 3학년 김보민(10) 군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고 했다. 문화기술체험관이나 펀펀모험나라처럼 아이들에게 재미를 안겨주는 공간은 여러 곳이다.
가을에 젖어 좀 고즈넉한 분위기를 스스로 연출해보고 싶다면 경주타워 뒤쪽에 있는 ‘시간의 정원’을 걸어보는 게 제격이다. 서양식 정원 구조에 동양적 분위기가 억새와 단풍의 가을과 어울린다.
시간의 정원을 거닐면서 느낀 삶의 시간을 화석박물관으로 옮기면 인생의 길고 짧음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박물관 앞마당에 샘플로 세워 둔 나무 화석의 나이는 1억 년. 박물관 안에 있는 화석 3000여 점의 나이를 다 합치면 사람의 숫자로는 계산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든 어른이든 화석 앞에서는 모두 지구의 신인류임을 실감한다.
경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디지털 옷 입힌 우리문화로 세상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요”▼
엑스포 사무처 직원 35명의 꿈
“전 국민의 문화 공원으로 가꾸고 싶죠.”
경주문화엑스포공원이 10년 만에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기반으로 성장한 데는 공원을 제 몸처럼 돌보고 밖으로 알리는 재단법인 문화엑스포 사무처 직원 35명의 고민과 노력이 숨어 있다.
공원을 상시 개장하면서 이들은 더 바빠졌다. 주말을 반납하기 일쑤고 공원 시설이 밤에 이용될 경우 한밤중에 퇴근하는 경우도 잦지만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원을 꾸미겠다는 꿈 때문이다. 공원 안의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다루는 마음가짐에 스트레스나 짜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문화재를 전공한 뒤 국립경주박물관에 근무하던 김리나(38·여) 씨는 2004년 이곳으로 아예 직장을 옮겼다. 살아 움직이는 문화에 끌렸다고 한다.
그는 2006년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한국 문화를 전통과 디지털로 결합한 작품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풍부한 신라문화에 디지털 기술의 옷을 입히는 프로그램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 프로그램을 맡은 변동렬(43) 씨는 서양화가다. 1998년 첫 엑스포 때 백남준의 유명한 작품인 ‘백팔번뇌’를 연출했고, 이번에는 경주타워 안에 신라문화역사관을 열었다.
2003년 엑스포의 주제 영상 ‘천마의 꿈’을 캐나다의 입체영화 배급사에 수출했던 그는 “여기서 국제 예술전시회를 열어 이곳이 국제 미술교류의 길목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별명이 ‘가위손’인 금동준(35) 씨는 공원 안 수십만 그루의 나무와 꽃, 잔디가 그의 분신이다. 공원 59만 m² 곳곳의 나무와 풀을 돌보다 보면 하루 20km가량을 걷는다.
하지만 직원들이 정성껏 공원을 가꾸더라도 ‘손님’이 찾지 않으면 헛수고. 백화점에서 회원관리 일을 하다 2004년 직장을 옮긴 백승흔(36) 씨는 공원 안에서는 얼굴을 보기 어렵다. 전국을 다니며 ‘공원 세일즈’를 하기 때문이다.
이태현 사무처장은 “직원들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공원에 문화를 심고 손님을 맞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문화엑스포공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원본보기]‘한일강제합방 부당성 세계에 호소’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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