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Culture]발레로 보는 홍등

입력 | 2008-10-17 03:02:00


장이머우 감독 연출… 강렬한 색감 돋보여

붉은 등불 아래 놓인 꽃가마에서 한 여성이 나온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이지만 그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경극 배우인 연인을 두고 늙은 지주의 세 번째 아내가 된다. 발레 ‘홍등’은 이렇게 화려하고도 서글픈 장면으로 시작한다.

중국 국립발레단의 ‘홍등’은 하반기 무용계의 화제작이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연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영화감독 장이머우의 동명 영화를 발레로 옮겼고, 장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65명의 무용수와 중국 민속악기 연주자 13명을 포함한 72명의 중국 국립오케스트라가 함께 내한한다.

‘홍등’은 지주의 첩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옛 연인을 잊지 못하고 다른 아내들과 갈등을 빚다가 파멸을 맞는다는 줄거리.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이 중국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서양 발레와 어울렸는가 하는 것이다.

안무를 맡은 왕신펑 씨는 “작품의 소재가 중국적일 뿐 아니라 극중 보이는 많은 것들에 중국 전통문화의 요소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서양의 클래식 발레와 구별되는 ‘홍등’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 화려한 무대와 의상

장 감독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돋보인다. 무대 뒤 수십 개의 홍등에 불이 켜지고, 울긋불긋한 병풍 뒤에서 무용수들이 나와 춤추며, 하얀 벽에 빨간 피가 튀는 대비로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한다. 빨강 노랑 초록 등 다양한 색상의 토슈즈 위에 갖춰 입은 것은 튀튀(발레복)가 아닌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 수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놓아 만든 경극 복장도 함께 쓰인다.

○ 경극과 발레의 조화

‘홍등’의 특징은 중국 전통예술인 경극을 발레에 끌어들였다는 것. 발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경극배우의 노래이며 음악 연주에도 시종일관 경극 타악기가 동원된다. 영주가 잔치를 벌이는 장면 중 경극이 극중극으로 나와서 경극 배우들이 연기하고 노래하는 장면도 볼거리다. 압권은 주역 발레리나와 그의 연인을 맡은 경극배우의 그랑 파드되(주역 무용수의 2인무). 발레리나는 발레를, 경극 배우는 경극의 무용을 하면서 남녀가 어우러지는 장면이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자극

첫날 밤 두려움에 떠는 부인을 남편은 강제로 범하려고 한다. 장 감독은 이 장면을 중국의 전통적인 그림자극으로 개성적으로 묘사한다. 남편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면서 권력을 쥔 강자를, 부인의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면서 유약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살 뒤 그림자로만 비치던 무용수들이 문을 찢고 나와 춤출 때 이야기의 주요 메시지인 약자의 비극성은 극대화된다.

17일 오후 8시, 18, 19일 오후 5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대전 예술의 전당(21, 22일), 경기 고양아람누리극장(24, 25일), 경기도 문화의 전당(27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29, 30일). 2만∼15만 원. 1588-789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