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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동네기업]특수전구 수제작 호소부치전구

입력 | 2008-10-17 03:02:00

호소부치전구의 한 종업원이 핀셋과 전기용접기를 이용해 머리카락 절반 굵기의 필라멘트를 용접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손과 눈의 감으로 의료-실험용 2000가지 제작

“불가능해 보여도 잘 만들어내니 살아남는 것”

1954년 3월 도쿄(東京)대 의대는 내시경을 통해 위(胃) 내부를 컬러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였다.

도쿄대 팀이 획기적인 개가를 올린 데는 한 작은 ‘동네기업’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위 내부를 촬영하는 데 필수적인 소형 전구를 만들어 낸 기업은 1938년 창업 이후 특수전구 제작에 한 우물을 파온 호소부치전구라는 곳이었다.

○ 허용오차 0.1mm

나리타(成田)국제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도쿄 시내를 향해 가다 보면 차창 밖으로 한글로 된 음식점 간판이 언뜻언뜻 비치는 아라카와(荒川) 구 니시닛포리(西日暮里)를 볼 수 있다.

신미카와지마(新三河島) 역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길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호소부치전구 본사 겸 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업원은 35명. 마치고바(町工場·동네공장)치고는 제법 큰 편에 속한다.

호소부치전구의 작업장은 공정에 따라 8개 정도로 나눠져 있다.

소형 기계가 몇 대 설치된 지하 작업장을 빼고는 기계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공장이라기보다 공방(工房)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종업원들은 핀셋과 휴대용 버너, 초소형 전기용접기 같은 작은 공구로 머리카락 절반 굵기의 필라멘트를 붙이거나 직경 3.8mm짜리 유리관을 성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 다카하시 겐지(高橋建志) 사장은 “때로는 바깥쪽 지름이 1mm, 안쪽 지름이 0.6mm에 불과한 초소형 전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도 들어온다”면서 “일본에서 이런 전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우리 회사가 유일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보통의 전구는 제조과정의 허용오차가 1mm 정도이지만 우리 회사는 의료용을 주로 만들기 때문에 허용오차를 0.1m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손끝과 시력의 조화

보통 제품보다 10배나 정밀해야 하기 때문에 호소부치전구의 공정은 하나하나가 고난도 작업이지만 그중에서도 ‘후지(封止)공정’은 특히 어려운 작업으로 꼽힌다.

후지공정이란 나중에 전구에서 공기를 뽑아낼 미세한 구멍 하나만 남기고 전구를 성형(成形)하는 공정. 후지작업장에는 이 분야의 일본 내 일인자로 꼽히는 오가와 요시아키(小川愛明·67) 씨 등 4명이 일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수작업은 경험을 쌓을수록 생산성도 함께 높아지지만 호소부치전구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빛을 다루려면 시력이 손끝의 감(感)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략 50대 초반을 지나면 시력이 노쇠해지면서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가 손끝이 날카로워지면서 오는 긍정적 효과를 상쇄한다.

기능인력 확보와 양성이라는 면에서 호소부치전구는 다른 기업에 비해 2배나 어려운 숙제를 지고 있는 셈이다.

○ 70년 백열전구 수작업 외길

그런데도 호소부치전구는 창업 이후 70년간 기계화에는 일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생산품목도 용도가 특수한 백열전구만을 고집하고 있다.

혈액 분석에 사용하는 전구, 담뱃잎의 수분함량을 측정하는 전구, 안과의 검안용 전구,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할 때 인체에 ‘열십(十)자’ 표시를 하는 전구, 다코야키(문어구이빵)를 적당한 온도로 보관해주는 전구 등 호소부치전구가 만드는 전구는 2000가지에 달한다.

기계화를 하려고 해도 수요가 제한돼 있어 수지가 맞지 않는 품목이 대부분이다.

호소부치전구가 수작업과 틈새시장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는 시장이 크거나 기계화가 가능한 분야에서는 대기업과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사장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주문은 대부분 까다롭기 짝이 없는 제품”이라면서 “일부 종업원은 ‘도저히 못 만들겠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까다로운 수요가 있기 때문에 호소부치전구가 70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