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형
‘X선광전자분광기’ 수입 주도… “한다면 한다”
○ 2007년, 부산의 원더우먼 (연봉 1억1000만 원대)
별명이 원더우먼이다. ‘성(姓)’도 같지만 행동이 더 닮았다고들 한다.
미국에서 방문연구원을 잠깐 한 것 빼고는 부산을 떠난 적 없는 지방 토박이다. 게다가 여성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보통은 남성 리더 밑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차분한 여성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 박사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한참 멀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산센터의 실무책임을 맡고 있기에 매번 새로운 기술을 구상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길이 10m의 입자빔가속기를 부산에 처음 설치하는 일을 시작했다.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소재나 첨단 반도체를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려면 입자빔가속기로 표면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 일에 정부가 5년간 75억 원을 지원한다. ‘억’ 소리 나는 규모다. 이런 대형사업을 처음 책임진다는 게 어깨가 무겁지만 괜찮다. 처음이건 대형이건 목표로 삼으면 무슨 일이든 해결해 나갔다. 그 결과 100여 편의 논문이 나왔고 성과급도 올라 입사 15년 만에 억대연봉 대열에 들어섰다.
○ 2003년, 도입기기 성공 내다본 혜안(5900만 원대)
원 박사팀의 주요 임무는 기업이나 기관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 그러나 외환위기 후 직접 기술개발에도 나서야 했다. 그때인 것 같다. 원더우먼 같은 본능이 살아난 게.
2003년 폐수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중금속을 동시에 측정하는 대규모 시스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실패 위험이 크지 않겠느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원 박사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산업폐수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결국 올해 개발에 성공해 2건의 특허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나노기술 산업화가 한창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에 X선광전자분광기라는 기기가 눈에 띄었다. 이것만 있으면 물질 표면에 있는 원소의 종류와 양, 형태까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에 20억 원이나 한다. 연구원이 장비 구입에 쓸 수 있는 돈은 1년에 70억∼80억 원. 다들 못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 박사는 자신 있게 설득했다. 사실 연구팀은 이 기기를 운영하는 훈련을 이미 마쳤고 활용방안까지 준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2002년 영국에서 수입해 온 X선광전자분광기는 지난해에만 4억여 원의 수입을 올리는 효자 기기가 됐다.
○ 1993년, 늦깎이 아줌마(초봉 2200만 원대)
사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남자 후배까지 교수가 됐지만 원 박사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1993년 석사 자리로 입사했다. 당시 38세 아줌마였다.
처음엔 서류 복사부터 전등 갈아 끼우기까지 닥치는 대로 나섰다. 유일한 여성이라고 차별받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몸에 밴 돌파력이 원 박사를 지금까지 끌고 왔다.
한국에서 수많은 원더우먼이 활약하는 꿈을 꾼다. 성별과 학력, 출신, 나이 어느 것도 실력과 성실을 막을 순 없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주목! 이 기술▼
원미숙 박사팀은 2002년 X선광전자분광기를 들여왔다. 시료 표면에 X선을 쪼여 원소의 종류와 양뿐 아니라 미세한 형태까지 알아내는 기기다. 각종 현미경과 함께 사용하면 산업소재의 표면 특성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나노미터 이하의 미세한 물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이 미래 첨단산업을 주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원 박사는 X선광전자분광기가 국내 산업에도 톡톡히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 원미숙 박사는
1956년 10월 부산 출생
1979년 2월 부산대 화학과 학사
1988년 2월 부산대 화학과 박사
1988년 1월∼1989년 7월 미국 뉴멕시코대 전기화학연구실 방문연구원
1993년 6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입사
2003년 9월∼현재 부산대 겸임교수
2004년 1월∼현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산센터 분석연구부장
2007년 7월∼현재 국가핵융합위원회 실무위원
2008년 1∼2월 과학기술부 예산자문위원
2008년 1월∼현재 대한여성과학기술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