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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제라르 뱅데]‘유목민’ 클레지오와 한국

입력 | 2008-10-17 03:03:00


1901년 만들어진 노벨상은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노벨상은 스웨덴 국왕이 수여한다.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국왕이 수여하는데 그 연원은 1905년까지 두 나라가 같은 스웨덴 왕국에 속했다는 데 있다.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으로 평화상 문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의학상 등 5개 부문의 상을 제정했다. 경제학상은 1968년 뒤늦게 만들어졌다.

노벨상에는 수학이 빠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노벨은 수학상을 만들면 그 상이 언젠가는 자신의 애인(노벨은 평생 결혼한 적이 없다) 소피 헤스를 유혹한 한 스웨덴 수학자에게 돌아갈 것을 염려해 수학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학자 존 필즈가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만들었다. 필즈상은 4년마다 40세 미만의 수학자 최대 4명에게 주어진다. 최초의 필즈상이 수여된 해는 1936년이다. 지금까지 시상식이 16번 열렸고 48명이 상을 받았다.

필즈상에서 프랑스의 성적은 아주 뛰어나다. 역대 수상자 48명 중 9명이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를 앞서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다. 러시아가 8명, 영국이 5명으로 프랑스의 뒤를 따른다.

노벨상은 지금까지 모두 805명이 받았다. 그중 56명이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받은 상은 문학상이다. 1964년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사르트르까지 포함해 14명에 이른다. 그 다음은 물리학상과 의학상으로 각각 12명이 받았고 평화상 10명, 화학상 7명, 경제학상 1명 등이다.

올해 노벨 의학상과 문학상이 프랑스인에게 주어졌다.

의학상은 1983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처음 발견한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와 뤼크 몽타니에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수상은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논란으로 이어진 한 과학적 사기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국 과학자 로버트 갤로는 똑같이 HIV 발견의 원조임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논문이 출간된 날짜가 진실을 말해준다. 프랑스 과학자의 논문은 1983년 5월 사이언스에 실린 반면에 갤로의 논문은 1984년 4월 같은 잡지에 실렸다.

지구상에 수천만 명이 에이즈에 걸려 있기 때문에 HIV의 발견이 갖는 경제적 이익은 엄청나다. 이 같은 이익을 둘러싼 과학 이외의 고려가 프랑스와 미국 간의 논란을 키웠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일하는 프랑스의 두 과학자는 인지도에서 훨씬 앞서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싸워야 했다. 20년이 지난 후 잘못은 시정됐다. 갤로는 노벨위원회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문학상은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에게 돌아갔다. 르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7년 태국에 있었으나 아동매춘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이후 멕시코에 4년간 머물면서 인디언 부족과 함께 생활했다. 전혀 다른 삶의 발견이 그를 뒤흔들었다. 1975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 제미아의 나라 서부 사하라는 ‘사막’이란 소설에 영감을 줬다.

르클레지오는 유목민적인 작가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니스, 미국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주로 거주하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는 어디에도 없지만 모든 곳에 있다. 그의 거주 공간은 세계다.

르클레지오는 이익과 소비가 유일한 기준이 되는 서구 중심의 세계에 늘 경계심을 품었다. 그는 한국과도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그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이 그를 매료시킨 나라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