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취약… 외국인 달러 뺄때마다 흔들
“외환보유액 투입해 환율방어해도 되나” 논란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하루에 133원 이상 폭등하며 다시 아찔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서울 외환시장에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는 외국인의 달러 수요가 쏟아져 나오면서 환율이 급등한 것.
여기에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로 세계 증시가 폭락한 데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면서 겨우 진정된 외환시장이 ‘패닉 상태’에 다시 빠져들었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폭등 주범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을 133.50원 끌어올린 주범은 외국인 주식 투자가다. 이날도 거래가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적은 거래량으로도 환율이 급변동하는 최근 서울 외환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이날 외환 거래량은 35억4800만 달러로 올해 상반기(1∼6월) 평균 거래량(97억 달러)의 36.6%에 불과했다. 지난달 16일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 이후 하루 평균 외환 거래량은 62억 달러로 급감했다.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날 6204억 원의 주식을 순매도한 외국인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역송금 수요가 나오자 환율이 순식간에 급등한 것. 이는 이날 외환 거래량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 원화 ‘나 홀로 초약세’ 이유는
16일 현재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해 말 대비 31.8% 하락했다. 유로(―7.4%), 영국 파운드(―12.9%), 호주달러(―24.6%)도 떨어졌지만 원화의 하락폭이 크다. 반면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일본 엔화는 지난해 말보다 12.9% 올랐다.
원화 값이 떨어질 만한 이유는 있다. 올해 경상수지가 11년 만에 100억 달러의 적자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외국인이 올해 33조 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해 중순까지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빨리 올라 ‘거품’이 빠지는 조정 압력도 받고 있다.
문제는 환율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것. 서울 외환시장은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거래량이 적은 데다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니어서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불안해지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다.
여기에다 거래가 위축되는 등 시장이 얇아져 최근처럼 외국계 은행의 달러 차입이 힘들어지고 수출업체의 달러 매물이 뚝 끊기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달러를 사면 속수무책 환율이 급등하게 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다”며 “최근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시중은행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점도 환율 불안의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외환보유액 2397억 달러가 버팀목
외환 전문가들은 올해 9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2397억 달러로 세계 6위 규모라는 점을 들어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한다. 기업과 은행의 건전성도 외환위기 당시보다 훨씬 나아졌다.
정부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2397억 달러가 일주일 내에 전액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에서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가 진행 중이고 단기외채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불안해한다.
이 때문에 ‘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을 털어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외환시장 규모가 위축돼 외환당국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이에 따른 외환보유액 감소분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외환보유액을 풀어 한국 증시를 빠져나가려는 외국인에게 싼값에 달러를 살 기회를 줄 필요가 있느냐”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 균형환율이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1000∼1200원대라면 이보다 높은 값에 달러를 사고 있는 외국인들이 정말 수혜자가 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