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이 분투(奮鬪)했지만, 기대했던 역전 K.O.펀치는 나오지 않은 것 같다."
15일 밤(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 헴스테드시 소재 사립대학인 호프스타라대 교정.
투표일을 20일 앞두고 열린 이날 TV토론은 미 대선 레이스의 사실상 마지막 결전장으로 꼽혀왔다. 여론조사에서 7~10%포인트 뒤지고 있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겐 전세를 반전시킬 최대의 기회였고,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겐 승리를 향한 마지막 시험대였다.
두 후보는 예상대로 세 차례의 토론 가운데 가장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고 결정적 한방이나 실수도 없는, 거의 무승부에 가까웠다.
토론이 끝난뒤 민주당 전략가들은 "마라톤으로 치면 스타디움에 먼저 들어선 오바마가 2위 후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결승선을 향해 뛰어 가는 형국"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컴백 키드'(come back kid)로 불리는 부도옹(不倒翁) 매케인 후보가 사력을 다한 추격전을 펼칠 것으로 보이며, 역대 대선에는 없던 '브래들리 효과'(흑인 후보에 대한 백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비롯한 변수들이 남아 있어 승부가 끝났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매케인이 3차례 토론중 가장 잘했지만 오바마 역시 이슈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국가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성정과 판단력을 가졌음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오바마 후보는 때로 매케인 후보가 공격성 발언을 하면서 실제로 오바마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인용하거나 문맥을 뒤틀어서 공격의 소재로 삼을때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失笑)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감점요인이 됐다.
토론뒤 CNN의 여론조사에서 "누가 더 잘했는가"라는 질문에 오바마 후보가 58%를 기록, 31%를 기록한 매케인 후보를 앞섰다. CBS방송이 무소속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53%가 오바마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토론에선 두 후보간의 근본적 노선 차이가 선명히 드러났다.
오바마 후보는 "미국인 95%의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약속하며 매케인 후보의 기업에 대한 감세 공약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매케인 후보는 '부의 확산'(spreading the wealth)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오바마 후보의 모든 계획은 '계급 전쟁'(class warfare)에 근거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조 위젤버거'라는 배관공이 토론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위젤버거 씨는 오바마 후보가 12일 오하이오주 톨레도를 방문했을때 오바마 후보와 감세정책을 놓고 토론했던 평범한 시민.
매케인 후보는 "자기 가게를 갖고 싶어 매일 10~12시간씩 일해온 조 같은 사람은 오바마의 공약대로면 증세 때문에 사업체 인수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두 후보는 아예 위젤버거 씨와 단둘이 만나 얘기하듯 카메라를 보며 "조, 나는 당신에게…"식의 화법을 계속 구사했다. 조(Joe)란 이름은 미국에서 평범한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많이 쓰인다.
위젤버거 씨는 당시 오바마 후보에게 "당신 계획대로면 난 세금이 늘어난다"고 항의했고, 오바마 후보는 "연간 25만 달러 이하를 번다면 세금이 줄지만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수입에 대해선 현행 36%대신 39%의 세율이 적용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위젤버거 씨는 이날 토론후 미 언론들에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누구를 지지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자유 무역 정책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졌다.
오바마 후보는 "한국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은 4000~5000대의 자동차를 파는데 그치고 있다. 이는 공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오바마 후보의 한국 관련 발언들은 수개월간 토씨도 거의 바뀌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의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불공정한 FTA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매케인 후보는 한미 FTA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오바마 후보는 각 지역에 있는 미국의 최대 우방국과의 FTA에는 반대하면서 테러조직을 지원해 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사람과 조건없이 마주 앉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경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세금을 올리고 자유무역에 반대한 마지막 대통령은1920년대 증권시장의 붕괴로 대공황을 초래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었다"며 "오바마 후보 역시 똑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기간 내내 오바마 진영이 제기해온 '매케인 당선=부시 3기론'에 상처를 받아온 매케인 후보는 이날도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은 부시의 예산안을 거의 대부분 찬성했다"고 공격하자 "오바마 의원, 나는 부시 대통령이 아니다. 당신이 부시 대통령과 맞서길 원한다면 4년전에 출마했었어야 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에 오바마 후보는 "사실 난 때로 당신의 정책을 부시의 것과 혼동하곤 한다. 핵심 경제 이슈에서 당신은 부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기이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이날 토론에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대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강조됐다. 매케인 의원은 3000억 달러를 들여 서민들의 불량모기지를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자는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면서 "이건 얼마전 클린턴 의원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매케인 의원은 지난달 24일 힐러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힐러리 의원이 경선기간에 내놓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책을 언급하면서 "매우 이끌리는 내용이다. 더 알고 싶다"고 물었다는 것.
힐러리 의원은 감사를 표하면서도 주로 듣는 편이었다. 3주후 매케인 의원은 힐러리 의원의 대책과 비슷한 3000억 달러 대책을 내놓았다. 힐러리 의원은 사무실에 매케인 의원의 사진을 걸어놓는 등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다.
힐러리 의원과의 통화사실이 공개되자 매케인 캠프는 "매케인 후보가 당파성을 떠나 좋은 의견은 언제든 수렴하며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두 후보는 최근 가열된 인신공격성 네거티브 선거 양상을 놓고 책임공방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최근 공화당 유세현장에서 오바마 후보를 겨냥해 "Kill him"(죽여버려)이란 외침이 나왔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 후보 지지자인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이 "매케인-페일린 후보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공격했는데도 오바마 후보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대해 오바마 후보는 루이스 의원의 발언은 세라 페일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유세에서 일부 청중이 "오바마는 테러리스트의 친구"라며 "죽여버려"라는 외침이 나왔는데도 페일린 후보가 이를 제지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와관련, 대통령 및 후보 경호 책임기관인 재무부 비밀검찰국(Secret Service)은 최근 펜실베이니아와 플로리다주의 페일린 후보 유세때 "Kill him"이라는 외침이 나왔다는 언론보도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으나 실제로 그런 표현이 나왔다는 확인은 하지 못했다고 15일 밝혔다.
○…토론장 주변은 오후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상징하는 모자, 티셔츠를 학생들은 지지 후보를 연호하며 캠퍼스를 계속 돌아다녔다.
토론장인 데이비드 맥 스포츠센터는 오히려 조용했지만 인근 몬로 센터 대극장과 존 크랜포드 애덤스 극장, 학생회관 옆 주차장 등 대형 스크린으로 토론회가 생중계된 현장은 일
반 지지자들과 학생들의 함성과 연호로 시끌벅적해 대조를 이뤘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오바마 측), '나라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매케인 측)는 피켓을 든 학생들은 진행자가 지지 후보를 거명할 때 마다 후보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매케인 후보가 "나는 부시가 아니다. 오바마가 부시와 대결하고 싶었다면 4년전에 출마했어야 했다"는 인상적인 반격을 하자 매케인 진영에서는 박수가, 오바마 진영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또 오바마 후보가 자신과 극좌파 학생운동가 출신인 윌리엄 에이어스를 연결시키고 있는 매케인 후보를 향해 "에이어스가 과격단체에 가담한건 내가 8살때였다"고 반박하자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헴스테드(뉴욕주)=신치영특파원 higgledy@donga.com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