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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덜어주는 의사될래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

입력 | 2008-10-17 03:03:00


백혈병 두 소녀, ‘샴 수술 권위자 고 박사와의 점심’ 소원 이뤄지던 날

2003년 척추가 서로 붙은 채 태어난 한국인 자매의 분리수술에 성공했던 샴쌍둥이 수술의 권위자 케이스 고 박사. 16일 낮 12시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이 싱가포르 의사는 기자의 옆구리를 당기며 “떨려요”라고 했다.

그를 떨리게 만든 건 백혈병 소녀들이었다. 의사를 꿈꾸는 김수예(14), 정아영(17) 양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고 박사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떨리기는 두 소녀도 마찬가지. 정 양은 고 박사에게 물어볼 질문을 빼곡히 적은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김 양도 “쑥스럽다”며 쓰고 온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2006년 급성 림프구 백혈병 진단 이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김 양은 “누구보다 많이 아팠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어렸을 적 중이염과 폐렴에 시달렸다. 뛰어 노는 걸 좋아해 손목도 두 번이나 부러졌다. 그는 “침대에 힘없이 누워 집으로 왕진 오는 의사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렸던 마음이 나를 의사로 키웠다”고 했다.

정 양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덕목이 궁금했다.

고 박사는 “의사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직업”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신경이나 뇌수술처럼 위험 부담이 큰 수술을 하다 보니 자부심 못지않게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것도 사실”이라며 “그 슬픔과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는 건 환자에게 느끼는 인간적인 애정”이라고 말했다.

내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정 양은 의대 진학을 위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털어놨다. 정 양은 중학교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들어간 탓에 기초가 부족한 편이다.

고 박사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료들과 ‘무조건 최선을 다하자. 나머지는 하늘의 일’이라는 구호를 외친다”며 “정 양은 친구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통을 견뎌낸 저력이 있는 만큼 남은 기간 두세 배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메이크어위시재단 국제본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 박사는 한국지부에서 주관한 연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17일 5년 전 자신에게서 분리수술을 받았던 민사랑·지혜 자매도 만날 예정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