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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모들 열정 지나쳐 자녀 원하는것 못 볼수도”

입력 | 2008-10-17 03:03:00


사버 세계최연소 교수 강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라. 그리고 유연하게 사고해라"

291년 만에 세계 최연소 교수로 기네스북에 오른 앨리아 사버(19·여) 건국대 교수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9층 회의실에서 열린 'Rage to learn(배움에 대한 열정)'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는 사버 교수의 부모와 서울시교육청 산하 영재원에서 선발된 학생 15명도 참석했다.

다음은 사버 교수의 강연내용.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잊지 않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성공한 자기 모습을 그려보고 가장 흥미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어린 나이에 대학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흥미로운 것을'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할머니가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의 차이점을 물었다. 한국 학생들은 공부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노력을 하면서 자신을 키워나가려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건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한국 학부모들은 열정이 지나쳐 자녀가 진정 원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부모가 자기 목표를 강요하면 아이는 '유연함'을 잃게 된다.

공부, 대학, 돈 이런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그런 것은 결국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이 누군 인지를 파악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어른이 되면 그걸 찾기 더욱 어려워진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파악하고 평생 간직해라. 모두가 특별하다.

그것이 유연함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서 또래들과 계속 공부하길 바라셨다. 그게 부모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유연하게 바꿔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

한국 사람들은 딱딱하게 잘 외우는 것을 공부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외운 것은 당장 시험 성적을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운 것은 언젠가 잊는다. 운이 나쁘게 시험을 앞두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한번 이해한 것은 잊어도 언제든 다시 추론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정말 사진처럼 모든 것을 암기하는 동급생이 있었다. 1, 2학년 때는 그 능력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3학년 이후 어려움을 겪었다.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도 필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한 번 들으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천재였기 때문이 아니다. 필기가 집중력을 방해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교수가 가르치는 것은 다 교재에 나와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충분히 예습을 하고 들어가면 필기를 하지 않아도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최선의 공부 방법은 다르다.

나에게는 한 주제를 오랫동안 깊게 파고들어 이해하는 게 맞지만 사람마다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내가 특별한 공부 비법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내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은 것뿐이다.

사실 이렇게 외우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까 수학이나 과학처럼 별로 외울 게 없는 과목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른다.

대학에 처음 갔을 때 동급생들처럼 늙어 보이는 게 지상과제였다. 한 동안 어른 옷만 잔뜩 사서 모으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런 딸이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또래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다.

대학생으로서의 나와 어린 아이로서의 나,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다.

그밖에 따로 영재 교육 같은 건 없었다.

생후 8개월짜리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가르칠 수는 없다.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을 원할 때까지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어릴 때 나는 몇 시간 씩 그림만 그리기도 했고, 디즈니 만화에 푹 빠져 살기도 했다.

어머니는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 유연함이 나를 최연소 교수로 만든 것 같다.

사실 늘 어리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나는 늘 동급생 사이에서 가장 작고 귀여운 꼬마였다.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 사실이 너무 싫어서 내가 그들과 함께 공부할 자격이 잇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한국에 와서 어린 건 마찬가지지만 별로 작은 키(154cm)는 아닌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최대한 많이 배워라. 그래야 자기가 될 수 있는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황규인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