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는 세계의 축/파리드 자카리아 지음·윤종석 김선옥 이정희 옮김/396쪽·2만 원·베가북스
힘의 대이동… 해 저무는 ‘팍스 아메리카’
“주변을 둘러보라. 세계 최고의 부자는 멕시코인이고, 세계 최대 상장기업은 중국에 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광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있고, 가장 큰 건물은 두바이에 곧 들어선다. 가장 큰 정유소는 인도에 건설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투자펀드는 아부다비에 있다.”
저자는 “10년 전만 해도 미국이 이 가운데 많은 분야에서 최고를 차지했었다”면서 “한때 미국 고유의 것으로 통하던 아이콘들을 이제는 다른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경제 정치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누려 왔던 미국의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세계는 세 번째 힘의 대이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5∼18세기 서구의 부상이 첫 번째 힘의 대이동이었고, 두 번째 대이동은 20세기 들어 유일 강대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의 부상이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세 번째 힘의 대이동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이 책은 세 번째 힘의 대이동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세계질서에 대한 전망이다. 원제는 ‘미국 이후의 세계(The Post-American World)’다.
저자는 주간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이다. 세계에서 매주 240만 부 이상 발행하는 잡지의 첫머리에 고정 칼럼을 쓴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미국 하버드대에서 새뮤얼 헌팅턴을 사사한 그는 헌팅턴의 추천으로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어페어즈의 최연소 편집장을 지냈다.
‘미국 이후의 세계’에선 세계 각국이 미국을 거쳐서 각자의 목표로 가던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해 스스로의 방식과 시스템을 형성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세계 모든 국가가 더는 객체나 관찰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주장하는 ‘플레이어’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글로벌한 질서의 탄생이다.”
즉 세계 질서는 미국 주도의 단극성(單極性)에서 유럽연합(EU)의 가세로 양극성(兩極性)을 띠게 됐으며 곧 중국 인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성장으로 다극성(多極性)을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를 좌우할 변수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 경제대국에서 나올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 그는 “‘나머지의 부상’이라고 하는 장기적 추세는 갈수록 뚜렷해질 것”이라면서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미국이 전에 없던 도전을 받게 되겠지만 문제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도전에 직면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구심점 없는 세계에서 생길지 모를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최근 미국발 경제위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미국에서 5월에 발간된 책이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다.
다음과 같은 당시의 전망이 간략하게 언급돼 있다.
“유동성 증가는 저렴한 신용대출을 가능하게 해줬다. 낮은 이자율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기술 관련 주식, 서브프라임 모기지 분야의 거품을 키우기도 한다. 그런 버블은 결국 터진다. 세계가 점점 더 상호 연관되고 신종 금융상품이 많아질수록 많은 시장관찰자들은 성장과 신뢰라는 미덕의 사이클이 패닉과 침체라는 악덕의 사이클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