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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홍권희]‘孤兒’가 된 소프트웨어업계

입력 | 2008-10-19 20:14:00


이명박 대통령은 9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IT(정보기술)가 일자리를 줄였다”고 말했다. ‘녹색성장’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 해도 대선후보 시절과는 달라졌다. 그는 대선공약을 통해 “소프트웨어(SW)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한국을) 10대 SW 강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SW 업계에선 “정보통신부의 폐지 이후 SW 산업이 계속 찬밥 신세”라며 이 대통령의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공기업들이 정부의 예산 감축 지시에 정보화사업 예산을 가장 먼저 깎은 것이나 중견업체 지원 목적도 있던 행정안전부의 공공정보화 사업이 대폭 축소될 처지가 된 게 모두 연관이 있다고 본다. 정부든 기업이든 IT관련 투자를 줄이면 SW 정품(正品) 구입 예산도 줄어 불법 복제를 더 하게 된다. 정부가 SW 산업에 대한 관심을 줄이면 벤처캐피털도 외면한다. 이처럼 악순환의 발단이 정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열흘 전 방한했던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글로벌 제프리 하디 부회장의 평가를 들어보면 ‘IT 강국 코리아’란 표현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는 “한국은 IT 인프라 개선이 경쟁국보다 더디며 정부가 불법 다운로드 단속 등 지적재산권 보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영향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BSA가 인텔리전스유닛(EIU)에 의뢰해 조사한 ‘2008 IT 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66개국 중 8위였다. 작년 3위에서 밀렸다. 현 정부가 SW를 홀대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정부가 선정한 차세대 성장동력에는 SW도 들어있기는 하지만 업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한다. 지식경제부가 지난달 내놓은 ‘뉴IT정책’도 SW 육성보다는 산업계가 한창 추진 중인 기존 산업과 IT의 융합을 지원하는 데 치우쳐 있다.

국내 1호 벤처기업가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수익을 따지지 않고 19년째 ‘비트교육센터’에서 IT 고급인력을 키워내고 있다. 조 회장은 “SW 업계 인력 부족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런 IT인력 양성이야말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인재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세계 반도체 시장의 3배인 7200억 달러(약 940조 원)의 세계 IT 시장에서 마음껏 뛸 수 있다. 세계 최대 SW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33년밖에 안됐다. 따라잡기가 제조업에 비해 수월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IT 벤처 창업은 매년 20%씩 줄고 있고 업계는 내년 부도태풍을 걱정한다. 1세대를 이을 후배 스타도 배출하지 못한다. 조 회장은 1999년 100억 원을 IT, 바이오, 부동산에 투자했다. 부동산은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인 ‘비트플라자’로 피어나 1, 2년 후엔 비트컴퓨터의 연구개발(R&D) 투자비를 공급할 수 있게 됐고 바이오도 약간 살아남았지만 IT쪽 투자는 거의 남은 게 없다고 한다.

이제 IT 업계는 IT를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부업이든 외도(外道)든 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서지현 버추얼텍 사장은 인터넷 경매회사와 제지회사를 인수했고 30년 IT 사업가인 김영수 케드콤 회장은 지난주 에너지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금융위기에 휩싸여 감원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취약한 국내 SW 업계가 부실한 지적재산권 보호, 정부 지원 감소, 경기침체의 삼각 파고를 견뎌낼 수 있을까.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