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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휴대전화, 너 없인 못살아

입력 | 2008-10-21 02:58:00


‘우∼웅.’

중학교 2학년 이모(14·경기 부평시) 양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중간 중간 둔탁한 진동음으로 문자 메시지 도착 사실을 알린다. “초등학교 친군데요, 중간고사 잘 봤느냐고 묻네요.” 1, 2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문자에 답문(답신문자의 줄임말)을 보내느라 이 양의 눈동자와 손가락이 바쁘다. 어떤 문자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기도 한다.

이 양의 학교에선 휴대전화 ‘삼진 아웃제’를 시행한다.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쓰다가 걸리면 처음엔 1주일, 그 다음엔 2주일 동안 압수하고, 세 번째 걸리면 졸업할 때까지 휴대전화를 압수한다. 모든 학년에 예외 없는 규칙이기 때문에 삼진아웃에 걸리면 졸업까지 피해막급인 1, 2학년생이 더욱 조심한다. 일부 학교는 조회 시간에 반별로 휴대전화를 걷었다가 종례를 마치고 나눠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에나 한 명쯤 무법자는 있는 법. 수업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간 큰 친구들이 있다. 휴대전화를 쥔 손을 책상 속에 넣고 분당 200타를 넘는 엄지손가락 타법으로 액정화면을 보지 않고도 문자를 작성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끔씩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설명하는 내용을 이해하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센스. 미세한 진동도 잡아내는 민감한 귀를 가진 선생님께 걸리는 것을 피하려면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 전 휴대전화 수신 모드를 무음 상태로 바꾸는 것도 필수다.

휴대전화 압수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은 대개 수신 문자를 확인하려고 책상 서랍에서 전화기를 꺼낼 때 발생한다. 그래서 일부 학생은 문구용 칼이나 숟가락 등을 이용해 책상에 액정화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을 뚫는 ‘대역사’를 벌이기도 한다(사진). 평소엔 교과서나 노트로 구멍을 살짝 덮어뒀다가 수업시간 문자를 주고받을 때 활용한다.

얼마 전 일주일 동안 압수당했던 이 양의 휴대전화는 화려한 핑크색. 처음 구입했을 때는 흰색이었지만 몰래 엄마의 매니큐어를 앞뒤로 발라 핑크색으로 만들었다. 핑크 전에는 샛노란 색이었다. 전문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간지나게(세련되다는 의미의 신세대 유행어)’ 튜닝하고 싶지만 용돈으로는 비용(1만∼2만 원 선)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양이 하루에 보내는 문자메시지는 평균 150∼200통. ‘밥 먹었냐?’, ‘TV에 너 좋아하는 동방신기 나온다’ 같은 친구와의 실시간 문자 대화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휴대전화 개통 초기엔 요금이 한달에 8만 원이 넘게 나와 부모님에게 혼나고, 바로 ‘청소년용 요금제로’ 바꿨다. 청소년 요금제는 한 달에 전송 가능한 문자량과 통화시간에 제한이 있어서, 이를 모두 소진하면 발신 기능이 정지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친한 친구들에게 ‘알’을 꿔 달라는 SOS를 칠 수 밖에 없다.

한 이동전화 통신사의 청소년용 요금제에서 문자전송이나 전화발신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사이버 머니’를 의미하는 ‘알’은 한 번에 500알씩 최대 네 번까지 친구의 휴대전화로 전송해 줄 수 있다. 이번 달에 빌린 알은 다음 달 갚아야 한다. 10대들 사이에선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21세기형 품앗이가 한창이다.

전화기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 부모에게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멀쩡한 전화기를 고장 내는 친구도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물 속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엄마가 ‘휴대전화 간수도 제대로 못하느냐’며 새 전화기를 안 사줄 수도 있거든요. 차라리 중간고사 평균을 10점 올리면 최신형으로 바꿔 달라고 협상하는 편이 낫죠. 점수가 안 오르면 어떻게 하냐고요? 뭐, 밑져도 본전이잖아요, 하하.” 이 양의 얘기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