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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드쉬의 변신…자유시장주의자에서 국가개입주의자로

입력 | 2008-10-21 17:50:00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부실기업 정리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던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가 프랑스 금융위기가 닥친 올해엔 정부의 구제금융 집행자로 변신했다. 그는 최근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 장면 1

1997년 12월 2일 한국 서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지원 조건이 재협상을 거쳐 타결됐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자기자본 4% 미만인 종금사 정리, 부실은행 정리, 국내총생산(GDP) 1.5%(약 7조 3000억 원) 규모를 감축하는 재정 긴축 등 가혹한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강만수 재정경제원 차관을 단장으로 한 IMF 협의단은 금융기관의 조기 정리를 막아보고자 3일 동안 마라톤협상을 했지만 결국 미셸 캉드쉬(Michel Camdssus)의 고집을 꺾지는 못 했다.

# 장면 2

2008년 10월 17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는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 Lagard)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티앙 노이어(Christian Noyer) 중앙은행 총재와 3600억 유로(약 561조 7856억 원) 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했다. 구제 금융안은 은행간 대출 보증에 내년 12월까지 3200억 유로, 은행 지분을 매입하는데 400억 유로를 투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가 돌아왔다. 그것도 '시장 자유 전도사'에서 '국가 개입 옹호자'로 변신해서.

프랑스 정부는 최근 하원에서 통과된 3200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대리 집행할 기구를 만들 예정인데 캉드쉬가 의장을 맡게 되었다고 최근 AFP가 보도했다.

또, 캉드쉬는 최근 세계 CEO들이 모인 필리핀의 한 경영자 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함께 대책을 조율한다면 올해 말에는 시장 상황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최근 선진7개국(G7) 및 선진ㆍ신흥시장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이후로 미국 발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구제 방안을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은행 예금 전액보증, 공적자금 투입, 국채 발행 등 직접적인 수단부터 외환 보유고 가동, 전격 금리 인하 등 간접적인 수단까지 가능한 조치는 모두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부실 모기지 자산을 인수하는데 7000억 달러(약 922조 6000억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고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정부 등 유럽 국가들은 1조 960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 금융안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 금리를 1.5%까지 인하했고 이어 유럽중앙은행도 금리를 3.75%로 내렸다.

이런 정책들은 10년 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IMF가 극렬히 반대했던 정책이다. 당시 IMF 총재였던 캉드쉬는 "아시아 지도자들이 금융 자유화를 후퇴시키거나 부실기업을 구제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은 부실 종금사와 은행을 조기 정리하라는 IMF의 요구만은 막아보려고 했으나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금융권의 대대적인 구조 조정으로 이어져 대량 실직 사태를 낳았다.

또한 시장 금리를 18~20%로 가파르게 올리고 긴축 재정을 유지하도록 강요당해, 국민과 기업들은 이자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졌다.

결과적으로 국가 부도는 면했지만 오랜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

캉드쉬는 1997년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를 지나며 교훈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자국의 위기에 대해서는 냉정할 수 없었던 것일까? 현재 캉드쉬의 발언과 행보들은 '이중 잣대'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난을 의식해서일까?

캉드쉬는 최근 IMF의 개혁 방향에 대해 "IMF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집행 기구에서 권력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발언권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