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리기 전 김경문 두산 감독이 두툼한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대구구장 1루 쪽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봉지에 든 물건을 꺼내는데 뭔가 하고 봤더니 야구공이 잔뜩 나왔다. 김 감독은 공에다 일일이 자신의 사인을 하더니 다시 봉지에 담아 관중석으로 건넸다. 김 감독의 한 팬이 사인볼을 왕창 부탁했던 것. 경기를 앞둔 감독이 관중의 사인볼 요청에 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날 김 감독은 숙소인 대구의 한 호텔에서 대구구장으로 출발하기 위해 구단 버스에 앉아 있다 자신을 알아본 초등학생이 “와, 대표팀 감독이다” 하면서 폴짝폴짝 뛰는 장면을 보게 됐다.
자신을 알아봐 준 초등학생이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김 감독은 학생을 불러 직접 사인한 야구공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김 감독이 사인볼을 건네면서 이름을 물었더니 이 아이가 “경문입니더”라고 말해 잠시 웃었다고 한다. 이 초등학생 이야기를 하면서 김 감독은 아주 오래전 얘기를 꺼냈다.
그는 “어릴 때 대구에 살면서 경북고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당시 경북고 야구부 서영무 감독이 내가 던진 공을 받아준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987년 작고한 서영무 씨는 프로야구 삼성 초대 감독을 지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선수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팬들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작은 반응과 관심에도 큰 감동을 받는다”며 “요즘처럼 팬들이 야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좋아해 줄 때 선수들도 팬에게 잘해야 야구가 계속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
국민 감독 김경문이 야구팬을 대하는 방식이다.
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