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YMCA맨… 한글 사랑도 남달라
‘영원한 YMCA 맨’이자 한글 사랑에 평생을 바친 오리(吾里) 전택부(사진) 서울 YMCA(기독교청년회) 명예총무가 21일 숙환으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15년 함경남도 문천 출생으로 함흥 영생중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신학교(현 일본신학대)에서 수학했다. 1952년 어린이잡지 ‘새벗’ 주간에 이어 1954년 월간지 ‘사상계’ 주간으로 일했다.
1938년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된 뒤 20여 년간 공백 상태였던 한국 YMCA를 재건시킨 공로자로 꼽힌다. 1957년 YMCA에 들어가 이듬해 사무국장이 됐고 1964년부터 75년까지 YMCA 총무를 지냈다. 6·25전쟁 때 불탄 서울 종로구 YMCA 건물을 10여 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총무로 활동했을 때 영국 출생의 캐나다인으로 ‘석호필’로 불리며 우리나라에서 의료와 선교활동에 앞장섰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와 각별한 사제의 연을 맺기도 했다. 1975년부터 YMCA 명예총무를 지내면서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03∼1945)를 집필해 YMCA 역사를 처음 정리했다.
1940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글을 못 쓰게 되자 일본에서 귀향해 한글 운동을 펼쳤다. 1991년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자 고인은 복원을 호소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아갔다가 쓰러져 지팡이에 의지해 생활했다. 그럼에도 “나는 죽어도 한이 없으니 한글날을 살려주소”라며 복원 운동을 벌였던 고인은 2006년 한글날이 국경일로 제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2년에는 한글인터넷주소추진총연합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름 뒷글자인 ‘오리 부(鳧)’자로 인해 ‘오리 선생’으로 불리면서 좌담회와 ‘사랑방 중계’ 등 TV 프로그램에서 구수한 입담도 과시했다.
한글학회 공로상, 외솔상, 인간상록수상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월남 이상재’ ‘한국교회발전사’ 등이 있다. 유족은 부인 한춘학 씨와 국재(서울여대 교수) 관재(애버트로직스 사장) 씨 등 2남 3녀.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안성시 우성공원. 02-3010-223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