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에서 미셸 공드리 감독이 살기 나쁜 건물로 그린 구로카와 기쇼의 나카긴 캡슐 타워. 사진 제공 확성기
다른 곳을 향한 창들… 분절된 도시의 삶
지난해 10월 73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가 23일 개봉하는 ‘도쿄!’를 본다면 참 씁쓸해할 것입니다.
이 옴니버스 영화는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와 레오 카락스, 한국의 봉준호 감독이 각각 만든 단편을 모았습니다. 공드리 감독의 ‘아키라와 히로코’ 편에 구로카와 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나카긴 캡슐 타워’가 잠깐 등장합니다.
구로카와 씨는 1960년대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을 이끈 일본 건축계의 거장입니다. 메타볼리즘은 유기체가 생장하듯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현대 도시의 경향을 반영한 개념입니다.
1972년 긴자에 세워진 나카긴 캡슐 타워는 지하 1층, 지상 13층의 철골 콘크리트 건물입니다. 구로카와 씨는 생전 “영국 아키그램(Archigram) 건축가 그룹이 상상했던 캡슐 건축을 최초로 실현했다”고 했습니다. 캡슐 건축은 분자(分子) 같은 단위공간을 모아 붙여 만든 것입니다. 단위공간의 연결 방식을 감추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 디자인 개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공드리 감독은 이 건물을 살기 나쁜 도쿄 자취방 사례로 영화에 담았습니다. 월세방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주인공 히로코를 실망시키는 허름한 건물. 하늘 높이 줄줄이 매달린 캡슐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터널 선샤인’(2004년), ‘수면의 과학’(2005년)을 영리한 메타포로 가득 채운 공드리 감독이 이 유명한 건축물을 생각 없이 프레임에 담았을까요. 구로카와 씨가 이 건물을 설계하며 했던 실험과 공드리 감독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주제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카긴 캡슐 타워는 직육면체 캡슐 방들을 비둘기 집처럼 쌓아 올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은 듯하지만 캡슐의 동그란 창이 보는 방향은 일정하지 않고 제각각입니다.
도시인들은 갈수록 더 빽빽하게 모여 살지만 그럴수록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구로카와 씨는 “도시가 사람들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생장할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30여 년 뒤 도쿄를 찾은 프랑스 영화감독은 이 건물을 분절된 도시인의 삶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봤습니다.
나카긴 캡슐 타워는 왜 고독해졌을까요. 똑같이 육면체 큐브의 집합체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큐브하우스와 비교하면 어렴풋이 답을 알 것도 같습니다. 캡슐 타워의 창문이 저마다의 허공을 향한 반면, 큐브하우스의 창문은 발아래 거리로 열려 있습니다. 마주 보고 소통해야 모여 살며 외롭지 않겠지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