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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18세기 조선에 매료… 정조시대만 무대에 올려요”

입력 | 2008-10-23 02:59:00


‘조선의 뒷골목…’ 연습 구슬땀 극단 ‘연극미’

《“임금 담배요, 임금 담배. 굶주린 백성에게 저민 고기를 던져주고, 추위에 시달리는 백성에겐 담요를 나누어 잠을 재워줄 수 있는 임금 담배∼.” “얼쑤.” 20일 오후 8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근처의 한 건물 지하. 장단에 맞춘 고수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전면 거울과 녹색의 매트가 전부인 연습실 안에 장구를 잡은 고수와 9명의 배우가 모여 있다. 이들은 극단 ‘연극미’의 배우들. 28일∼11월 9일 경기 수원 KBS 수원아트홀 소극장에서 올릴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를 연습 중이다.》

배우 모두가 호서대 연극과 출신

18C 소설가 이옥 접한뒤 푹빠져

파격적 실험공연… 해외서 호평

극단 연극미는 조선 정조 시대만 연극으로 만들고 있는 이색 극단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배우가 29세에 불과한 이 젊은 극단이 정조 시대에 꽂힌 것은 2005년 11월. 멤버가 모두 호서대 연극학과 출신인 이들은 대학 시절 연극과 교수를 통해 ‘이옥’이라는 18세기에 활약했던 소설가를 접한 뒤 당시 정조가 다스리던 18세기 조선에 매료됐다.

“서민 문학과 경제가 활성화되던 당시는 일반인들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조의 문체반정처럼 자유로운 문화를 억누르는 정책도 있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을 통해 현재를 비춰보고 싶었습니다.”(유종진 기획)

작품은 대부분 이옥의 소설에서 시작한다. ‘칠야’ ‘류광억전’ ‘이홍전’ ‘장복선전’ 등을 통해 ‘문체반정 연극미’ ‘이옥의 히스테리, 정조의 히스테리’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 등이 나왔다. 당대 서민들이 주인공이다. 류광억은 똑똑했지만 신분 때문에 대리 시험 전문가로 살았고 이홍은 희대의 사기꾼, 장복선은 세금을 빼돌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하급 관리다. “이옥의 소설은 기-승-전-결의 구조가 아니라 기-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중간 스토리는 상상력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18세기 조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정조 시대를 다룬 소설, 영화, 드라마도 빠짐없이 챙겨봅니다.”

이홍이라는 인물도 지난 작품에서는 서민의 영웅으로 그려졌지만 이번에는 토론을 통해 다단계 사기꾼으로 그려졌다. 이홍이 사기를 치는 품목으로 담배를 택한 것도 당시 시대에 담배가 만연했다는 기록을 접했기 때문이다.

연극미의 작품은 독특한 아이디어가 많다.

배우들의 복장은 대부분 신문지로 만들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절제된 움직임을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팸플릿도 신문처럼 만든다.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을 기사 형태로 꾸몄다. 그냥 팸플릿을 주면 버리지만 신문 팸플릿을 주면 읽기 때문이다.

연극미의 이러한 노력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평가를 받았다.

2006년 7월 이탈리아 세계국제대학연극페스티벌에 초청받은 이래 모로코 아가디르국제대학연극 축제, 브장송 국제연극제 등에서 초청받았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들은 9월 열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헤이리 판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수원에서 올리는 공연도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무대공연작품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올리게 됐다. 올해 올린 공연만 9차례다.

이들의 나이는 24∼29세.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 연극배우를 전업으로 나선 이들에게 현실은 혹독하다. 연극을 올리기 위해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홍보 도우미, 편의점 직원, 음식점 서빙 등 종류도 다양하다.

“차곡차곡 모았다가 연극 작품이 올라가게 되면 그 돈으로 밥값이나 차비로 쓰며 생활해요. 지원금이 나오지만 극장 대관료, 연습실 사용료, 소품 제작비 등을 내려면 빠듯하거든요.”(이종렬)

정조 시대만 4년째 다루는데 지겹지는 않을까.

“‘조선의 뒷골목, 이옥 이야기’의 경우 지금까지 7번째 버전이 나왔는데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더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이옥의 작품만 해도 무려 70∼80작품에 달해요. 18세기 조선을 다룰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웃음)”(유종진)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