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대통령은 당을 떠나라.”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1997년 10월 말.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인 이회창 총재가 YS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나 다름없는 YS에게 “당에서 나가 달라”고 정색하며 요구한 것이다. YS로부터 당 총재직을 물려받은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 총재가 비장의 카드를 빼낸 것은 추락하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YS는 ‘식물 대통령’이었다. 인기가 바닥인 YS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검찰의 한보철강 수사로 YS의 아들인 김현철 씨는 구속된 상태였다. 임기가 불과 4개월 남은 YS는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총재의 YS 탈당 요구는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검찰 수사 유보방침과 맞물려 있었다. 강삼재 사무총장이 ‘DJ 비자금’ 의혹을 터뜨렸지만 검찰은 시큰둥했다.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비자금 수사는 떨어지는 지지율을 반전시킬 극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김태정 검찰총장은 미동도 않았다. 이 총재는 여기에 YS가 깊이 관여했다고 봤다. 이른바 ‘청와대 음모설’이다. 청와대가 여당 후보를 도와주기는커녕 검찰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게 이 총재 측의 생각이었다.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정치인의 비자금 수사는 성역 없이 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직 대통령(전두환, 노태우)을 감옥에 보내고 현직 대통령 아들까지도 구속된 마당에 무엇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느냐는 것이다. 1992년 대선자금 수사를 검찰에서 철저하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현직 대통령인 YS를 발판으로 삼아야 DJ라는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3김(金) 정치’ 타파를 통한 정치개혁의 큰 그림이었다. ‘3김 정치=부패 정치’라는 쪽으로 몰고 간다는 대선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아들 병역비리 문제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이 총재로선 어떤 형태로든 국면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청와대는 “누가 누구보고 나가라고 하느냐”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YS는 격노했다.
이 총재는 1993년 2월 YS정부 조각(組閣) 때 대법관에서 감사원장으로 발탁됐다. YS는 10개월 후인 12월에는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 자리인 총리에 그를 기용했다. 그러나 4개월 만에 이 총재는 총리 자리에서 중도하차한다.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운영 문제를 놓고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YS와 대립한 뒤 옷을 벗었다. 이때부터 그에겐 ‘대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YS는 1996년 4·11총선을 앞두고 이 총재를 신한국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1997년 3월 13일 YS는 그를 당 대표로 전격 기용해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YS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 3번째 출마한 이 총재를 겨냥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YS와 이 총재의 15년 애증(愛憎)을 돌아보면 정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