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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검은 백조’가 지구촌 뒤흔든다…‘블랙 스완’

입력 | 2008-10-25 03:01:00


◇블랙 스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차익종 옮김/548쪽·2만5000원·동녘사이언스

잠깐 시공간을 무시해보자. 이제 우리는 18세기 유럽의 조류학자 2명과 항해에 나섰다.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간 먼 바닷길, 그 끝에 드디어 발견한 신대륙.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불릴 그 땅에서 당신은 기이한 새 한 마리를 만난다. 검은 백조.

흰 새라서 백조(白鳥)라고 이름 지은 새가 검은색이라…. 조류학에 몸담은 평생의 연구가, 아니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마리의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정설’이 일거에 무너져 내린다. 딱 한 마리의 새 앞에서.

‘블랙 스완’의 주장은 일견 간단하다. 레바논 출신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인 저자는 세상은 ‘검은 백조’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백조는 통계학 용어인 ‘극단값’이다. 극단값은 과거의 경험으로는 존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대 영역 바깥에 있는 관측값이다.

저자는 ‘검은 백조’를 극단값으로 치환한 뒤 현재까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투자전문가 등은 검은 백조라는 ‘극단값’의 존재도 모른 채 사단이 일어난 뒤에야 소급 적용해 아는 척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에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 먼저 일상적이고 작은 사건이 지배하는 ‘평범의 왕국.’ 하나의 케이스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몸무게. 무작위로 1만 명을 뽑았을 때 세계 최고로 뚱뚱한 이가 포함됐다 해도 그 하나는 전체 평균에 상관이 없다.

또 다른 세계는 ‘극단의 왕국’이다. 이례적인 하나가 전체를 뒤바꾼다. 예를 들면 똑같이 무작위 1만 명을 뽑되 이번엔 부(富)의 평균을 내보자. 그런데 여기 빌 게이츠가 섞였다면? 웬만한 9999명의 합보다 그의 재산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현대세계를 이런 극단의 왕국으로 파악한다. 제1, 2차 세계대전이나 9·11테러, 인터넷 등이 블랙 스완에 해당한다.

저자의 검은 백조론은 처음 나왔을 당시 홀대받았다. 지난해 “조만간 상상을 넘어선 최악의 파국이 월스트리트를 덮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월가에 독설을 퍼부은 이 책을 뉴욕타임스는 조목조목 비판했다. 미국통계학회는 저자의 기고문 한 편에 반박 논문 3편을 함께 실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증시 폭락, 글로벌 경제위기 등 저자의 독설이 현실이 됐다. 세계는 이제 저자를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사상가”(더 타임스)라고 부른다. 저자가 검은 백조였던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끊이지 않는 사고는 ‘과거의 관찰로 미래를 결정짓는 오해’ 탓이다. 전례만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검은 백조에 대한 방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 검은 백조론은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해법은 ‘심심하다.’ 저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우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예외의 경우를 감안해 위험에 대비하고 기회로 삼으라고 말한다. “최대한 집적거려라. (역으로 생각하고)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원제 ‘The Black Swan’(2007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