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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4년 日‘가미카제’ 첫 출격

입력 | 2008-10-25 03:01:00


몽골은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 정벌에 나섰으나 폭풍 때문에 실패했다.

일본인들은 몽골군을 물리친 두 번의 폭풍이 간절한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들을 보호해 준 신을 기리기 위해 일본 사람들은 그때의 폭풍을 ‘가미카제(神風·신이 일으키는 바람 또는 신성한 바람)’라고 부르게 됐다.

오늘날 가미카제라는 단어는 다른 뜻도 갖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새로운 유형의 전사를 탄생시켰다.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적 함정에 돌진하는 자살 특공대도 ‘가미카제’로 불렀다.

1944년 10월 25일 오전 8시.

첫 가미카제가 필리핀 레이테 만 미군 함정 정박지에 출현했다. 각각 250kg의 폭탄을 실은 일본군 단발엔진 전투기 4대가 고도 2만 피트(약 6100m)에서 최고 시속 372마일(약 600km)로 미군 항모 1척과 군함 3척을 향해 돌진해 자폭했다.

이후 일본 패망 때까지 2500여 명의 ‘인간 폭탄’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 들었다. 성공 확률이 겨우 6%였던 가미카제는 적군에 두려움을 주는 심리전의 성격이 더 컸다. 가미카제의 주요 장비는 비행기와 어뢰였는데 가끔은 글라이더와 보트도 사용됐다고 한다.

미국 위스콘신대 인류학과 오누키 에미코 교수는 가미카제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가미카제 병사의 85%가 고등교육을 받은 학도병이었고 상당수가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대학이었던 도쿄(東京)제국대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오누키 교수는 “가미카제는 천왕을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무사도로 무장된 사람이라기보다는 대다수가 지원을 강요받았으며 불가피한 죽음을 맞은 불쌍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도쿄제국대 재학 중 가미카제로 징집된 하야시 다다오의 일기에는 “지금은 새벽이다. 오전 3시다. 아! 죽고 싶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

가미카제를 창설한 일본 항공부대의 오니시 다키지로 해군 중장은 일본 패망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 가미카제 영령들에 대한 사죄를 담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