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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경쟁력]⑦금메달리스트 최민호

입력 | 2008-10-25 13:25:00


"자, 최민호 선수 감정 잡으시고…컷!"

17일 경기 부천시 실내체육관 N라면 CF 촬영장. 파란 유도복을 입은 최민호(28·한국 마사회)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던 감동의 순간을 재연했다.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며 울음 터뜨리던 그 순간, TV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께 눈물이 핑 돌았던 그 순간, 최 선수는 엄마를 떠올렸다고 한다.

"엄마요, 천사 같은 우리 엄마가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최 선수가 고등학교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매일 오전 4시 성당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아들을 위한 기도를 올렸던 엄마다. 결국 수녀님은 엄마에게 성당 열쇠를 맡겼을 정도다.

엄마. 나지막이 불러본다. 누구에겐들 삶의 힘이 되어주지 않는 엄마가 있으랴. 하지만 최 선수에겐 더욱 각별한 이름이다. 고통스러워도, 포기하고 싶어도 그가 주저앉을 수 없었던 이유는, 누가 보건 말건 묵묵히 연습하며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엄마였다. "엄마의 삶이 가여워서"였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어렵게 양장점 꾸려가며 자식들 키워

최 선수의 어머니는 결혼을 하기 전 의상실 차디 찬 바닥에서 하루 두 시간만 잠을 자면서 양장 일을 배워 돈을 벌었다. 최 선수가 중학교 3학년 되던 해, 아버지가 큰 돈을 떼이고 사업에 실패하자 그의 어머니는 경북 김천에서 다시 양장 일을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가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매일 술로 날을 새셨지만 엄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어요. 혼자 몰래 우시는 것을 본 적도 있지만 저와 동생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셨어요. 엄마를 보면서 흔들려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고 운동을 계속했지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보고 재기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린 민호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아들 보기 창피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도로 위에서 비 오듯 땀 흘리는 막노동부터 시작해 지금은 버스 운전을 하며 늘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아들은 엄마 때문에 이를 악물었고 엄마는 그런 아들이 한없이 고마운 모양이다. 최 선수는 낯을 살짝 붉히며 "엄마가 '민호 네가 열심히 사니까 가족들이 다 열심히 산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영어 강사를 하던 최 선수의 동생은 혼자 힘으로 미국에 건너 가 유학중이다.

"엄마가 지금까지 '세상에 나처럼 복 없는 삶이 있을까' 하셨는데 지금은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웃으세요. 저와 동생을 보시면서 너무 행복하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러세요."

● 효자 최민호가 엄마를 울린 사연

최 선수가 유도에 입문한 것은 현역 유도선수로 활약 중인 사촌형 최성하 선수를 따라다니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유독 작고 몸이 약했던 최 선수가 유도를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극구 말렸다. 최 선수는 엄마를 피해 도망 다니며 유도장을 다녔다. 최 선수가 엄마 말을 거역한 것은 단 한번, 그 때였다고 기억한다. 유도는 운명이었다.

"왜소하고 허약한 제가 유도를 하겠다고 하니 엄마가 걱정이 많으셨어요. 그래도 몰래 몰래 유도장에 갔습니다. 결국 엄마가 지셨죠. 엄마가 '민호야, 민호야, 이제 유도 시켜줄게'하고 우시면서 골목길을 뛰어 도망가는 저를 따라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들의 고집에 꺾인 뒤 어머니는 작정한 사람처럼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았다. 양장점에서 혼자 벌어 자식들을 키울 때에도 최 선수를 위해 고기를 사고 늘 한약을 달였다.

"제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아직 집도 장만 못하셨어요. 엄마한테 번듯한 집 한 채 사 드리는 게 제 꿈입니다. 지금도 한달에 용돈 70만원만 받아쓰고 제가 버는 돈은 다 엄마 드려요."

● "엄마가 옆에 있어 외로운 줄 몰라요"

최진실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최 선수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깊은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어 마음이 아프다'는 글을 올렸다. 운동선수는 외롭다. 스타만큼 외롭다. 늘 스스로를 대면하고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려 3개월 동안 선수촌 생활을 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운동만 해요.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보니 점점 친구들과도 소원해지고 2년 전에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어요.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동한다는 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운 일이예요."

그런 최 선수가 기댈 언덕은 역시 엄마다. 그의 어머니는 2주에 한 번 서울로 올라와 최선수와 데이트를 했다. 일요일 오전에 외출해서 엄마랑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를 했다. 엄마가 다시 김천으로 내려가면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경상도 남자가, 특히 운동선수가 엄마랑 길게 통화를 한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엄마랑 이야기하면 마음에 너무 편해요. 그 날 있던 속상한 일부터 엄마 옛날 얘기까지 수다를 떨다 보면 눈 깜짝 할 사이에 시간이 갑니다. 짜증을 내도 묵묵히 받아주시고 기쁜 일에는 누구보다 크게 웃어 주세요."

최 선수에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체중 감량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전에는 2주 만에 11㎏을 감량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전에는 6일 만에 9㎏을 감량했다. 체중 감량 마지막 단계엔 밥을 굶고 땀복 6개를 입은 채 사우나에 들어가 수분을 모조리 뺐다. 죽을 만큼 힘들었고 지쳐 있는 상태에서 경기에 임하니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 한 것은 당연했다. 이를 지켜 본 그의 어머니는 같이 밥을 굶었다.

"엄마는 제가 체중 조절 하는 걸 보시면 밥이 안 넘어간다고 하세요. 아들이 굶는데 어미가 어떻게 밥을 먹겠냐고 하시면서… 요즘에는 경기장에도 안 오시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지켜보고 시합을 보려니 가슴이 아파서 못 보시겠다고 합니다."

● 실수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지금 힘든 것은 그냥 고통일 뿐이다. 실수는 있다. 포기는 없다'

최 선수의 좌우명이다. 어찌 보면 촌스럽고 투박하다. 그러나 최 선수는 흔해 보이지만 '포기는 없다' 외에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정말 최선을 다 해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면서.

"성공한 사람들은 화려한 말로 비결을 얘기합니다. 제가 막상 금메달을 따고 보니 비결이란 게 단순한 것이더군요. 포기 안 하기를 잘 했고 최선을 다 하기를 잘 했고 끝까지 해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뿐입니다. 금메달을 따서 행복하다기보다 후회가 남지 않아 행복해요."

연습하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꺼이꺼이 울었던 적도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습을 지나치게 해서 힘이 빠졌던 것인데 당시는 왜 이 동작이 안 될까 자책하면서 좌절하기도 했다. 지친 것은 생각지도 못 한 채 계획한 연습 횟수를 채워야 마음이 편하니, 몸이 아팠다.

"새벽 6시 눈만 뜨면 운동 하는 생활을 명절이고 휴일이고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밥 먹는 것도 손 운동이라 생각하고 각을 잡아 수저를 들었고, 자다가 잠이 깨면 팔굽혀 펴기를 30~40번씩 하고 다시 잤어요."

유도복을 벗어 던져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3위에 그치자 스스로 '동메달 그랜드 슬래머'라고 부를 만큼 실의에 빠졌다. 그래도 유도 외에 운동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이 유도하는 동료들 중에 이 정도 노력이면 프로 축구나 프로 야구 선수를 해도 성공할 것이라고 자조하는 경우도 많지만 전 그런 생각 해 본 적이 없어요. 유도에서 최고가 아닌데 야구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요? 유도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자존심입니다."

그는 끝내 자신을 넘어섰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자신이 계획한 연습량을 채워 드디어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제가 다른 선수보다 앞선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능력이 아니라 연습량이 아닐까 해요. 선수촌에 입촌하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동만 했어요.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연습을 시작했고 스스로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밤 9시에 다시 나와서 연습을 해요. 그런 날이 셀 수도 없어요. 연습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서 울면서 연습장에 간 적도 있지만 연습을 거른 적은 없으니까요."

지금도 양장점을 운영하는 최 선수의 어머니는 일을 정리한 뒤 고향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게 소망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오지 않는 이유다. 최 선수는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되면 '천사 엄마'를 도울 작정이다.

"엄마는 나의 힘이에요. 이제는 제가 엄마의 힘이 되어 드릴 차례입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김동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