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흡연 ‘유행’… “유혹 뿌리치면 친구들이 놀려요”
서울 강서구의 모 고교 2학년생 S 군은 종종 편의점에서 담배를 산다.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탄로날까봐 형의 주민등록증을 지갑에 분신처럼 넣고 다닌다. 눈빛이 예리한 주인을 만나면 계산대 앞에 서있는 순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S 군은 하루 평균 담배 한 갑을 피운다. 가장 독한 ‘말버러 레드(타르 함량 8.0mg)’와 ‘팔리아먼트(5.0mg)’만 고집한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담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나가는 꼬마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주민등록증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허름한 동네 구멍가게를 ‘발굴’해 그곳에서만 집중적으로 사기도 한다. ‘선배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담배를 사다 주는 어른도 있다.
S 군은 처음엔 부모가 늦게 귀가하는 친구 집에 모이거나 후미진 골목을 찾아 담배를 피웠다.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에 창문을 활짝 열고 30초 만에 한 대를 뚝딱 피우기도 했다.
요즘엔 3, 4명의 친구와 ‘흡연조’를 만들어 학교에서 단체로 피우기도 한다. 이들은 철저히 역할을 분담한다. 한 명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창문이 열리는 칸을 선점한다. 나머지는 다른 학생이 그 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화장실 앞에서 망을 본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면 금기를 깬다는 스릴 때문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는 게 S 군의 말이다.
담배를 다 피운 뒤에는 ‘흔적’을 없애는 의식을 치른다. 현장범으로 걸리면 최소 학교봉사 10시간 이상의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기본이다. 냄새 제거제나 향수를 사물함에 준비해 뒀다 뿌리는 아이도 있다.
주로 학교 근처 놀이터나 노래방, PC방에서 담배를 피우다 보니 한 달에 한 번꼴로 주민이 학교에 제보하기도 한다. 이 때마다 불시에 소지품 검사가 실시되지만 담배를 속옷 속에 숨기면 발각될 확률은 ‘제로’다.
정원이 35명 안팎인 반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절반 이상이다. 여학교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 보건 교사는 “담배를 하나의 유행처럼 생각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는 통과의례로 여기다 보니 담배를 피워도 죄책감을 느끼는 학생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자체적으로 금연 캠페인을 벌이고 외부 강사를 초청해 특별강연을 열어도 효과는 크지 않다. “일류대에 들어간 친척 형도 고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단지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항변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어떤 땐 강연이 정규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항의하는 학부모도 있다.
S 군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담배를 꺼내 피우다 교사에게 들켜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주머니에 넣어놨던 담뱃갑이 옷을 벗을 때 떨어져 엄마에게 ‘딱 걸린’ 적이 있다. 친구 담배라고 핑계를 대다 삼자대면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금연이란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겨울방학 내내 잘 참다가도 개학해서 다시 담배를 피우는 친구도 있다. S 군은 친구들이 담배를 피울 때 일부러 밖에 나가 유혹을 뿌리치기도 하지만 “너 그러다 서울대 가겠다”는 야유 섞인 비난을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와 절교하지 않는 이상 금연은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S 군의 말이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